(4) 연재소설
“대학생? 졸업했어요? “
“취업 준비하면서 잠깐 도와드리고 있어요.”
논 사이의 좁은 포장도로를 지나며 봉고차는 덜컹거렸다. 뒷좌석에 앉은 백유리는 선글라스를 쓴 채 창밖을 살폈고, 원우는 조용히 운전하는 은채의 얼굴을 힐끗거렸다. 보면 볼수록 황은수와 너무 많이 닮았다. 그 얼굴을 보면서도 히죽거리는 안정태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어디서 본 적 없어요? 왜 난 낯이 익지?”
정태의 뻔뻔한 말에 백유리는 코웃음을 쳤고, 이원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평범한 얼굴이라 그런가? 식사는 7시, 메뉴는 닭백숙인데 괜찮으세요?”
“좋아요. 너희들도 괜찮지?”
대답 대신 유리는 인스타 릴스에 빠졌고, 원우는 봉고차 밖으로 지나가는 섬의 풍경을 보았다. 벼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고, 스친 바람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여름의 논 그 한가운데에 교회가 보였다. 1층짜리 하얀 교회도 지붕 위 십자가도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잠시 후 민박집의 주차장에 봉고차가 멈췄고 세 친구가 내렸다. 주차장 옆의 계단 위로 민박집이 있었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계단 옆 우물이었다.
“와! 나 우물 처음 봐. 이거 먹을 수 있나?”
정태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곧장 우물 쪽으로 갔다. 순식간에 휩쓸려서 유리가 따라가자 민박집주인 딸이 우물 두레박 끈을 풀었다.
“저희 섬은 지하수를 써요. 이건 백 년도 넘은 거라고 들었어요. “
은채는 나무로 만든 두레박을 던져 우물물을 끌어올렸다. 그게 뭐라고 유리와 원우도 우물 안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으로 켜켜이 쌓인 돌들이 보였고, 짙은 초록빛 이끼 사이로 우물을 바라보는 세 친구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제일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원우였다. 좁은 데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이에 멀미가 났다.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죄어왔다.
“으! 진짜 시원해. 마실래?”
정태가 먼저 마시고 원우와 유리에게 내밀었지만, 둘 다 거부하고 계단 쪽으로 갔다. 정태는 한 모금 더 마시고 남은 물을 아스팔트 바닥에 뿌렸다. 하얗게 메말랐던 흙먼지 바닥에 물 자국이 났다.
민박용 빌라는 방 두 개에 거실과 욕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황 씨 민박에는 그런 빌라가 세 채 있었고, 한가운데에 집주인이 사는 본채가 있었다.
“7시에 저기로 오시면 돼요. 그런데...”
은채가 본채 건물을 가리킨 후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꺼냈다. 유리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빌라 안을 훑었고, 원우와 정태만이 은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사이렌이 울려요. 사이렌이 울리면 되도록 안에 있는 게 좋아요. 안개가 껴서 사고가 가끔 나거든요.”
은채의 말에 안정태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원우는 안개라는 말에 관심이 사라져, 왔던 길로 눈을 돌렸다. 멀리 초록빛 논 사이로 하얀 교회가 보였고, 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바다는 반짝이는 빛의 길이 나있었다. 고요했고, 평화로웠지만 원우의 머릿속은 불안으로 어지러웠다.
“시작할 때는 짧게 세 번, 끝날 때는 길게 한 번이에요.”
“언제쯤? “
정태 혼자 궁금한 표정으로 은채에게 다시 물었다.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조금 달라요. 요즘은 주로 해가 질 때, 해가 뜰 때예요. 사이렌 소리가 들려도 놀라지 마세요.”
빌라 안을 살피던 백유리가 코웃음을 치고는 은채를 향해 빈정댔다.
“안개 좀 낀다고 사이렌씩이나? 과장이 심하네. “
백유리는 항상 그랬다. 생각나는 말은 더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그것도 늘 짜증을 섞어서. 오늘은 정태도 원우도 그런 백유리를 말리지 않고, 뒤에서 지켜봤다.
“손님들 식사 준비는 누가 해요? 엄마? 뭐... 이모 아니면 언니?”
백유리의 말에 원우가 조용히 침을 삼켰다. 안정태는 은채를 빤히 바라보았다.
“식사는 제 담당이에요.”
“엄마는 없어요?”
“아빠랑 둘만 있어요. 아빠는 곧 들어오실 거예요.”
“외동딸? “
“언니가 있었는데 …”
“있었는데, 왜요? 결혼? 뭔데요? 응? 응? “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은채에게 유리가 다그쳤다. 검은 선글라스가 가면이라도 되는 듯 유리는 거침없었고, 막무가내였다. 그래선지 은채는 어렵게 대답했다.
“사고로 죽었어요.”
“무슨 사고? 교통사고? 설마, 자살?”
은채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백유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검은 선글라스로 표정을 감춘 백유리는 멈추지 않았다.
“난 그거 진짜 아니라고 봐. 왜 죽어? 죽을 각오로 살아야지? 남은 가족은 어떡하라고 죽어? 무책임한 거 아니야?”
이원우가 유리의 팔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하지만 안정태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런 거 묫자리 때문이라던데? 한 집에서 연달아 두 명이나 자살했으면, 조상의 묘를 잘못 쓴 거라고 들었거든.”
안정태는 그렇게 말하고, 은채를 바라보았다. 원우도 유리도 황은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7층에서 떨어져 죽은 황은수를 닮은 얼굴 때문이다. 세 친구는 그 얼굴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표정이었다. 짧은 순간 황은채 눈썹 사이에 주름이 지어졌다.
“두 명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비웃으며 조롱하던 유리와 정태는 입을 다물었다. 핑계도 변명도 농담도 못 하는 두 친구 너머에 서 있던 원우가 은채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이랑 둘만 산다고 해서 헷갈렸나 봐요. 남은 가족이 마음고생 많았겠어요.”
은채는 차분한 표정으로 세 친구를 바라볼 뿐 대꾸하지 않았고, 네 사람 사이로 침묵이 잠시 흘렀다. 그때, 마을 방송이 나오는 확성기로 사이렌이 울렸다.
웨에에엥. ……웨에에엥. ……웨에에엥.
그 요란한 소음에 유리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원우는 예상했던 것보다 큰 소음에 잔뜩 인상을 쓰고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안정태의 기대감으로 들뜬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세 친구의 뒤에 선 은채의 입꼬리가 그제서야 점점 위로 올라갔다.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던 은채가 등 뒤에서 말했다.
“오늘은 좀 빠르네요. 산책이라도 다녀오세요. 요 앞에 잠깐 나가는 건 괜찮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