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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pr 01. 2024

잠수병

연재소설


‘황 씨 민박’ 광고 스티커를 붙인 봉고차가 논 사잇길을 달렸다. 늦여름의 햇살은 눈이 부시게 반짝였고, 초록의 벼가 바닷바람에 익어가는 논은 한가로웠다. 조금 전 이 섬에서 두 명이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누가 알까?’


운전하는 황은채의 옆자리에서 숲을 바라보던 원우가 고개를 돌려 하얀 아스팔트 길을  보았다. 멀리 붉은색 고무 물통과 집게를 들고 걸어가는 나이 든 여자가 보였다. 다리가 불편한지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황은채가 그녀 앞에 차를 멈추고 차창을 내렸다.

                    

“타세요.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 요.”

                   

은채의 말에 반가워하기는커녕 물통을 든 여자는 이원우부터 살폈다. 잔뜩 경계하는 그 눈빛에 놀라 원우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괜찮아요. 타세요.”     

“됐어. 그냥 가.”

                 

은채는 더 권하지 않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원우는 아침에 숲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를 떠올렸다. 안개가 껴있을 때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이 안개가 사라지자 길 위로 나왔다. 하나같이 물통과 집게를 들고, 길 혹은 지붕과 논에 떨어진 것이 있나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넋이 나간 듯한 원우와 눈이 마주치자 하나같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원우에게 다가와 묻지 않았다.

                        



“여객 터미널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어요. 거기서 실종 신고를 하면 될 거예요.”

                    

원우는 고개를 돌려 은채의 얼굴을 보았다. 세 명의 손님이 왔다가 한 명의 손님만 돌아가는데도 전날과 똑같은 미소였다. 그 미소를 향한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원우는 그저 침묵했다.


선착장 매표소에서 배표를 한 장만 살 때부터 원우는 두통이 밀려왔다. 무겁게 짓누르는 압력으로 숨이 찼다. 매표소에서 나오던 원우는 정오를 향해가는 햇빛과 마주했다. 바다에 반사된 햇빛은 두 배의 빛을 뿜었다. 황은채는 선착장 근처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떴는데 눈앞이 뿌예졌다.

      

순간 원우의 눈에 황은채가 둘로 보였다. 나란히 서 있는 두 명은 황은채와 황은수처럼 보였다.


“황은수?”


조용히 이름을 읊조리고 나니 7층에서 떨어질 때의 황은수 표정이 떠올랐다. 마지막 기억하는 황은수의 얼굴은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종이로 만든 꽃 같았다. 그러자, 지금 자신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원우는 민박집에서 본 가족사진을 떠올렸다. 황은채와 나란히 앉은 황은수. 지금 황은채와 황은수가 나란히 서서 그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안해.  … 소용없겠지?‘

     

원우는 눈을 깜박이며 흐려지는 두 사람을 끝까지 붙잡아 보려 했다. 하지만 곧 하나로 돌아온 황은채가 원우에게 다가왔다.

                   

“여기 사람들은 안개에 익숙해요. 아주 어려서부터 할아버지한테 아버지한테 듣고 또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사이렌이 울리면 문을 다 닫고 밖으로 나가지 마라. 모두 그 규칙을 지켜요.”

                    

은채의 말은 파도가 되어 그의 귀에 와 부딪쳤다.

              



“그래서 무관심해요. 안개가 끼면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숨어있어요. 경찰이 와서 물어도 다들 모른다고 할 거예요. 알아도 모른 척할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그래요. 언니 일도 엄마 일도 모른 척한 사람이 민박 손님 일에 나설 리 없어요.”

 

원우는 대꾸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듣기만 하다가, 재채기처럼 참지 못하고 내내 맴돌았던 말을 꺼냈다.

                        

“알고 보낸 거죠? 그 사진... 초록색 손톱.”

     

황은채는 황은수가 웃던 그 얼굴로 웃었다.

     

“예약 전화가 왔을 때, 정말 기뻤어요.”          

“안정태도 백유리도 …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면서 왜 모른척 했어요?”

                   

은채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생각해 보니 내내 웃었던 그 미소였다. 이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손전등을 빌려줄 때, 보름달이 뜬 선해미 해변을 걸을 때 내내 지었던 그 표정이었다.

                    

“숲에서부터 정태의 핸드폰을 갖고 있었어. 아마... 정태 손가락도 가지고 있었겠지. 어둠 속에서 손전등으로 길을 찾아주는 척할 때, 해변에서 문자를 보는 척할 때, 정태 핸드폰으로 뭘 하고 있었어요?”

                    

황은수의 동생 입꼬리가 귀 아래까지 올라갔다. 많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배가 오네요.”

                    

은채의 말대로 멀리 선회하며 여객선이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진 속 그거, 뭡니까? 그것만 가르쳐 줘요.”     

“안개가 데려오는 것. 다들 그렇게 말해요.”


은채는 그렇게 대답하고 선착장으로 걸었다. 나이 든 주민의 가방을 들어 선착장 끝으로 옮기는 황은채는, 그저 젊고 착한 섬 주민으로 보였다. 은채를 보던 이원우는 머리를 긁기 시작했다. 머리를 긁고, 목을 긁는데, 허벅지 위로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를 멈추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다시 앞이 흐려졌다가 태양이 두 개로 보였다.

    

“안개가 데려오는 것.”

                   

이원우는 그렇게 되뇌며 바다를 보았다. 대낮의 바다는 그저 푸르고 아름다웠다. 지구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바다가 그저 푸르고 아름답기만 할 리 없다. 황은채의 말이 맞다. 바다가 해파리를 데려오는 것처럼, 그 괴물 같은 생명체는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본 적이 있느냐, 본 적이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여객선이 멈추고 손님들이 내리고 또 탔다. 대부분이 섬 주민들이었다. 그들의 틈에 섞여 이원우도 여객선에 탔다. 그는 타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 야외 선미 난간 앞에 섰다. 선착장 바로 앞에 황은채가 서 있었다. 배가 섬에서 멀어지자, 황은채가 또 둘로 보였다. 황은채와 함께 황은수도 원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친절한 배웅이었다.     




사진봉도가 안 보일 때쯤 원우는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켜자마자 계속해서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전화벨 대신 진동음도 이어졌다. 안정태의 잘린 손가락으로 황은채가 무슨 짓을 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원우의 핸드폰 화면에 ‘아버지’라는 발신자 이름이 떴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이원우의 귓가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빛으로 가려고 하지 마. 눈이 부시면 눈을 감게 되어 있어. 눈을 감으면 너의 적이 너의 목을 잘라도 모르는 거야.


이원우는 고개를 숙여 난간 위에 놓인 자기 손을 보았다. 햇빛을 받은 손톱은 초록빛이 돌았다. 그의 눈 속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아래 둥둥 뜬 해파리가 들어왔다. 해파리 아래의 바다는 그 무엇보다 어두웠다. 그보다 더 깊은 어둠은 세상에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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