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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Mar 28. 2024

푸르스름한 이끼

연재소설


손이 떨렸다. 유리를 삼킨 바다는 이미 잠잠해졌는데, 그녀를  절벽으로 밀 때의 두근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우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절벽 끝으로 가 팔을 높이 올렸다.


‘하지만 …… 백유리처럼 조류에 쓸려가 줄까?‘

‘바위틈에 끼어 있다가 물이 빠지면?‘


망설이던 원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숲은 지독한 초록빛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초록색 이파리들이 해초처럼 흔들렸고, 깊은 숲에는 언제든 덮칠 것만  같은 안개가 숨어있었다.


‘나가야 해. 여기서... 섬에서... 빨리 나가야 해.’


이원우는 숲에서 나가기 위해 서둘러 걸었다. 하지만 수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나무와 나무를 덮은 이끼군락이 길을 가려,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도망가. 빛이 있는 쪽으로! 하지만… 그게 어딘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어느 곳을 둘러봐도 미세한 물방울이 떠다녔다. 안개의 물방울이 흘러 다닌 곳마다 푸르스름한 이끼가 번지고 들러붙어 있었다. 이끼는 안개에서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고, 공기 속으로 포자를 뿜었다.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어.’     


원우는 무작정 빛을 향해 걸었다. 눈이 부신 쪽을 찾아 걸으며 손으로 입과 코를 가렸지만,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포자를 품은 물방울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깊이 들어왔었나 하는 의문이 들 즈음, 그는 이끼가 잔뜩 낀 나무뿌리를 밟고 넘어졌다. 몸을 일으켜 앉은 원우가 접질린 발목을 주무르며 이끼에 덮인 나무뿌리를 보았다.     


‘설마... 설마...’


이원우는 어금니를 꽉 물고 나무뿌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의 굵은 뿌리인 줄 알았는데 형태가 조금 달랐다. 제일 먼저 손에 닿은 건 축축한 이끼였다. 까슬한 그 이끼 아래 만져지는 건 단단한 뿌리가 아니라 말랑한 피부였다.     


“으아아아!!”     


이원우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고 그것을 다시 보았다. 구부러진 무릎, 땅을 짚은 손, 그리고 나무에 붙은 얼굴. 이건 사람이다.


‘설마. 설마. 설마.’     


원우의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호흡은 가빠지고, 숲을 떠다니는 포자는 기도를 통해 폐로 스며들었다. 손을 뻗어 나무 아래의 얼굴을 만졌다. 얼굴에 뿌리내린 이끼를 뜯어냈더니 안정태는 눈을 뜬 채 죽어있었다.     


심장이 죄어들었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숲을 울렸다. 그가 이끼를 뜯어낸 자리에 다시 포자가 앉았다. 초록색도 파란색도 아닌 그 사이의 어중간한 색깔, 푸르스름한 이끼가 안정태의 눈과 코에서 다시 자랐다.     



이원우는 정신없이 손을 털고, 뒤로 물러나다가 멈췄다. 등 쪽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숲에는 아직 채 숨지 않은 안개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망가야 했지만 어쩌면 이게 기회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원우는 슬그머니 이끼로 뒤덮인 안정태 사체로 가 땅에 붙은 손을 잡았다. 옷으로 문질러 이끼를 떼어낸 정태의 손가락으로 핸드폰의 지문인식 버튼을 눌렀다.      

‘뭐가 있는지만 확인하고 버리면 돼. 모르니까 두려운 거야. 알면 두렵지 않아.‘


잠금 해지가 된 정태의 핸드폰에서 카톡부터 찾아보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계속 넘겨보아도 카톡 앱은 보이지 않았다. 인스타 앱도 페이스북 앱도 삭제되고 없었다. 문자창은 모든 메시지가 지워져 있고, 통화목록조차 다 삭제돼, 원우와 유리의 발신자 번호만 몇 개 남아있었다.     


‘누굴까? 누가 이렇게 다 지워버린 거야?’     


원우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저장된 사진을 확인했다. 섬을 찍은 사진과 영상들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으로 찍은 것은 안개 속에 가려진 이원우의 흐린 얼굴이었다.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이원우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그전 사진들을 훑었다. 수백 장의 사진이 지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원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확대한 사진은 문자창 캡처 사진이었다.      


하얀 아스팔트 위에, 흉측한 것이 놓여있었다. 말라버린 피부와 돌출된 눈, 커다란 입과 그 입에서 나와 길게 늘어진 보라색 혀. 물통 속 그 생물체였다. 원우는 사진을 좀 더 확대해 보았다. 핸드폰 화면 전체를 채운 것은 초록색 손톱의 사람 손가락 한 마디였다.


그 사진 아래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섬에 안개가 끼면 이상한 게 나와요. 섬사람들은 모두 쉬쉬합니다.




정태의 핸드폰을 쥔 원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황은채의 미소 띤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미끼였어. 이 사진 한 장으로 안정태를 끌어들인 거야. 의도적인 복수였어.‘


핸드폰이 다시 까만 화면으로 바뀌었다. 터치하자, 잠금 화면에 다시 정태의 가운뎃손가락이 떴다. 그의 등줄기로 오싹한 한기가 지났다. 정태의 반대쪽 팔을 바라보던 원우가 몸통 아래로 손을 넣어 숨겨진 정태의 손을 더듬었다. 징그러운 느낌보다 더 생경한 느낌이 그의 말초신경을 타고 뇌로 올라왔다. 그리고 빨간불이 들어왔다.     


있는 힘껏 빼낸 정태의 다른 쪽 손을 확인했다. 확실했다. 손가락 중 가운뎃손가락이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잘려 있었다.


원우는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일 때마다 이끼 포자가 몸속으로 잠입했다. 들어온 것들은 나가지 않고 몸 이곳저곳으로 퍼졌다. 내뿜는 숨에서 비릿한 풀냄새가 났다. 어지러웠고, 솔직히 두려웠다.


‘되돌릴 수 없어. 아무것도 뒤로 가는 건 없어.’


빛이 보였다. 대나무 숲 끝에 눈부신 빛이 보였다. 그곳으로만 가면 살 것 같았다. 드디어 숲을 빠져나온 원우는 숨을 몰아쉬며 얼어버렸다. 그곳은 우물이었다. 민박집 주차장 옆의 오래된 우물. 원우는 망설이지 않고 우물 속으로 안정태의 핸드폰을 던져 넣었다.


- 첨벙!

물소리는 작았고, 파문은 짧았다.




‘이제 됐어. 증거는 없어. 아무도 찾지 못해.‘


이원우의 등 뒤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선 원우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섬에 들어와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주민들이었다. 하얀 아스팔트 위를 군데군데 걸어 다니고 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물통과 집게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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