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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Mar 21. 2024

아침 안개

연재소설


“아들, 너는 규칙을 만들래? 아니면 규칙을 바꾸려다 죽을래?”

“뭐가 다른데요?”     


원우의 아버지는 밥상 앞에만 앉으면 그렇게 물었다. 선택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안정태 핸드폰을 보는 내내 원우는 아버지의 질문을 떠올렸다.


핸드폰은 잠겨있었고, 지문인식이었다. 핸드폰을 터치하자 잠금 화면에 안정태의 가운뎃손가락이 떴다. 원우는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이 이상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안정태가 아니라 안정태의 핸드폰이었다. 그는 친구의 핸드폰을 들고 숙소에서 나왔다.      


유리의 방은 조용했고, 민박집 본채 건물은 어두웠다. 마당을 밝히던 백열전구도 꺼져서 빛이라고는 어디쯤인지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논길의 가로등 하나와 밤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보름달 그 정도였다. 원우는 정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계단을 내려왔고, 우물 근처에서 멈췄다.      


“우물에 버리면 누가 찾겠어.”     


하지만 눈앞에 우물이 보이자 원우는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어둠을 빨아 당기고 있는 우물과 그 뒤에서 들려오는 대나무 잎 스치는 소리 때문에 지옥의 입구 같았다.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의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원우는 조용히 우물로 다가갔다.      




동그란 입구 근처에 간 것뿐인데 비릿한 물 냄새가 훅 다가왔다. 차가운 한기가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잡히는 것은 모조리 움켜쥔 채, 깊은 지하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원우는 얼른 우물에서 떨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손님?”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에 원우가 잔뜩 긴장해서 바라보았다. 민박집의 주인 황 씨가 계단 위에서 원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 체격에 턱 주변이 덥수룩한 수염으로 가득한 남자는 원우를 금세 움츠러들도록 했다.     


“친구가 안 돌아와서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곧 날이 밝으니까 그때 숲에 들어가 봅시다.”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 황은수 아버지는 트럭으로 향했다. 조금 굽은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린 듯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빤히 보던 원우가 한발 다가갔다.


“이 시간에 어디 가세요?“

“배에 잠깐... 안개 끼기 전에 손 볼 게 있어서요.”     

“태워주실래요? 선착장 쪽을 안 가봐서요.“


황은수 아버지는 원우를 차에 태웠다. 트럭의 전조등 불빛이 논 사잇길을 비추고, 오직 그 불빛에 의존해서 움직였다.


“안개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습니까? “     


원우는 황 씨가 어떻게 반응할지 유심히 보았다.     




“뭐, 가끔. 주의를 주는데, 귀담아듣지 않는 손님들이 꼭 있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사이렌이 세 번 울리면 움직이지 말고, 사이렌이 한 번 울리면 그때 나가라. 그게 그렇게 힘들까요?”     


황은수 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푸념하며 어둠 속에서 트럭의 속도를 올렸다. 전조등을 켜고 있었지만, 어둠 속의 길은 예측 불가였고 너무 좁았다. 그래서 덜컹일 때마다 논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선착장의 공터에 도착하자 원우는 트럭에서 내려 아침이 다가오는 바다를 보았다.     


“혹시 사이렌이 울리면 배로 오든가, 차에 들어가 있어요. 아시겠죠?”     


황 씨는 그렇게 당부하고 낚싯배 위로 올라갔다. 원우는 선착장 앞으로 가 황 씨의 움직임을 살폈다. 선실 안에 켜놓은 불빛 때문에 그의 움직임이 잘 보였다.     


‘ 딸이 투신자살하고, 얼마 있지 않아 부인은 실종. 실종이라고는 해도 자살이 분명해. 저 남자는 어떤 마음으로 살까? 안정태가 예약했을 때부터 정체를 알았다면? 정태를 바다에 던져버렸으면, 핸드폰도 같이 처리했어야지. 아니! 지금 나를 살려두지 않았겠지. 얼마나 좋은 기회야. 딸을 위한 복수. 그런데, 물통 속에 정태 핸드폰은 왜 넣은 걸까? … 잠깐! 소리가 어떻게 들린 거지? 그 거리에서? 물통 속에 있는 핸드폰 벨소리가 들릴 수 있나? 그게 … 정태 벨소리가 맞나? ’




원우는 바지 주머니에서 정태의 핸드폰을 꺼내 내려다보았다. 핸드폰이 그에게 와있다는 것은 오직 하나만 의미했다.     


‘이건 … 사고가 아니야. 하지만, 어떻게?‘


백돌을 넣는 통에서 흑돌을 하나씩 골라내 다시 흑돌통에 넣는다. 하지만 흑돌통에 들어가자 흰색처럼 보인다. 원우는 머리가 아파왔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은 흰색일까 검은색일까? 애초에 백돌통에 하얀색 돌이 있기는 했었나?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 그 물통 속에 있던 건 뭘까?’     


원우는 핸드폰과 뒤섞여 있던 생물체를 떠올렸다. 미끈대고 얼룩덜룩했던 그것.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형체의 생물체. 커다란 입과 핏줄이 다 터진 눈알과 입에서 나온 아주 긴 혀.      


원우는 고개를 돌려 황 씨의 배를 보았다.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황 씨는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해 보였다. 그 배의 뒤로 보름달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보름달이 바닷속으로 잠수하자, 새벽의 하늘은 텅 빈 듯 공허해졌다. 차가운 새벽공기가 원우의 목덜미를 스치며 바다의 수면에 내려앉자, 순식간에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물방울들이 수면 위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헤엄치는 구름처럼 바다 위를 얕게 날아다니며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원우는 바다의 변화에 넋이 나가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 위에서 황 씨가 배로 오라고 다급히 손짓하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다는 금세 하얀 안개로 차오르고 눈앞을 가렸다.                    


웨에에엥. ……웨에에엥. ……웨에에엥.               


고막을 찢는 사이렌 소리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바다의 안개는 천천히 선착장을 가득 메워 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원우는 그제야 도망치듯 민박집을 향해 뛰었다. 안개보다 더 빨리 움직이면 그 공포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땅으로 기어 올라온 안개는 바람을 타고 섬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떠오른 늦여름 태양조차 안개가 가리고 있었다. 안개는 조용히 머뭇거리지 않고 논을 덮었다. 초록의 논을 다 채운 안개는 논 가운데 있는 교회를 해일처럼 덮쳤다. 교회의 반짝이던 십자가도 덮어버린 안개가  논 사잇길로 올라왔다.          


하얀 손과 발로 기어 다니는 세이렌 같았다. 그 노랫소리에 스스로 물에 뛰어든 선원들처럼, 안개에 사로잡히면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만 같았다.     


‘달아날 수 있어.‘


이원우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뛰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멈추면 곧 죽는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들! 규칙을 만들래? 규칙을 바꾸려다 죽을래?


‘뭐가 다른데요?’

원우는 뛰던 것을 멈췄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 심장 소리 너머에서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들! 만드는 쪽은 두려워하지 않아. 오직 바꾸려다 죽는 쪽이 두려움에 무너지는 거야.     




이원우는 하얀 아스팔트 길에 서서 안개가 몰려오는 것을 마주했다. 하얀 바다 안개가 원우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았다. 앞도 뒤도 구분할 수 없고, 나인지도 너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원우는 두 손을 들어 눈 가까이 가져왔다. ‘이것은 내 손이 맞나?’ 안개 속이 아니라 바닷속 깊이 잠수한 것만 같았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그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을 옥죄는 메스꺼운 소리. 고장 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           


딱. 딱. 딱. 딱 ……     


발신자는 이원우였다. 자신의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둔 채 숙소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여보세요?"

“정태야, 나야. 원우. 지금 어디야?”     


핸드폰 너머에서 정태를 찾고 있는 목소리는, 예상대로 이원우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놈이다.’     


이원우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피어올랐다. 안개 속에서 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놈. 정태의 얼굴을 하고 유리라고 했던 그놈. 그놈이 이젠 자신을 이원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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