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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Mar 18. 2024

웃는 사람

연재소설

어둠을 되짚어가는 길은 낯설었다. 분명 그 길을 걸어 선해미 해변으로 갔는데, 돌아가는 길은 처음 가는 길 같았고, 안개 낀 길과 다르지 않았다.


“안개 때문에 난 사고가 뭡니까?”     

“실종이죠. 찾은 사람도 있지만 못 찾은 사람도 몇 명 있었어요.”


원우는 숲에서 내려오던 안개를 떠올렸다. 순식간에 시야를 다 가렸던 안개. 안개가 집어삼킨 안정태는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자, 원우는 다른 질문을 했다.


“죽은 사람도 있습니까? “

“모르겠어요. 실종인 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원우는 은채의 말을 곱씹으며 민박집을 향해 걸었다. 뒤엉켜 버린 것 중 확실한 것 하나만을 잘라내 보았다. 다른 것은 지우고 하나만 남겼다.


‘황은채는 우리를 일부러 안개 속으로 내 보냈어. 왜?‘


떠오르는 답을 원우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황은수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 황 씨도 안다면, 유리가 위험했다. 원우는 민박집을 향해 급하게 걸었다.


민박집 우물이 보였다. 마당의 백열등 불빛이 우물의 형태를 볼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우물 뒤 대나무 숲은 여전히 어두웠다. 계단을 더듬어 마당으로 올라가던 원우는 놀라,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에 숨었다.




민박집의 넓은 마당 가운데에 백유리가 서 있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민박집주인이자 황은수의 아버지 황 씨가 함께 있었다. 거대한 뱃사람의 그림자와 나란히 선 백유리의 그림자는 너무나 낯설었다.


선해미 해변에서 돌아올 때 보았던 그 길과 같았다. 보았던 것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던 그 기분이 고스란히 이원우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상상도 못 한 것을 보았다. 백유리는 웃고 있었다. 명확하다고 믿은 것이 다시 뒤엉켜 버렸다.

‘백유리는 정말 백유리일까?’

황 씨와 웃고 있는 백유리라니... 그건 안개 속에서 본 안정태의 비어버린 눈보다 더 소름 끼쳤다.  그는 어둠 안에서 웅크린 채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크게 떴다. 백유리가 웃자, 황 씨도 웃었다. 그의 딸이 죽음을 결정하도록 만든 범인과 함께 웃고 있었다.


“안 올라가세요? “     


뒤따라온 황은채가 어둠 속의 원우를 향해 물었고,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백유리와 황은채 아버지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원우는 손전등을 은채에게 건네고 빌라로 걸었다. 백유리가 원우를 따라왔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했어?”     


원우는 빌라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따져 물었다.




“이 섬에 안개가 끼면 관광객이 가끔 사라진대. 밤에는 찾기 힘드니까, 해 뜰 때 찾으러 가자고 하셨어. 사라진 사람들은 대부분 숲에서 찾았대.”


“숲?”     


황은채가 데려갔던 곳은 숲이 아니라 해변이었다.      


“됐어! 안정태 찾든 말든 난 내일 첫 배로 나갈 거야. 11시쯤에 배가 들어온다니까, 난 그때 나갈게. 넌? … 이원우? 넌 어떡할 거냐고? “


원우는 속이 부글부글 댔다. 저들이 끌고 들어와 놓고, 이제 와 또 모른 척한다. 문제를 일으켜 놓고, 끌어들이려 하고 결국 책임지라고 떠넘긴다. 이번에도 또.     


“넌 어떻게 할 거야? 남아서 정태 찾을 거지?”     

“그런데, 왜 웃었어?”     

“뭐?”     


조금 전 그가 본 것이 무엇인지, 그 광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네 입으로 나한테 했던 말 잊었어?”     

“내가 뭐랬는데?”     


백유리가 짜증스레 되물었다.     


“잘린 사람 머리라며? 황은수 아빠가 들고 있던 물통에 그게 들어있었다며?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너, 잘린 머리를 들고 있던 사람한테 웃어주고 있었어.”     


“미친놈! 내가 언제? 돌았어? 진짜 이상한 건 너잖아? 안정태 너랑 같이 있었어. 네가 안정태 쫓아갔었잖아. 그 안개 속에서 너희 둘이 나만 놓고 사라졌어.”     




백유리의 앙칼진 말대꾸에 이원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봤어. 너, 웃었어.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 왜 웃었어?”     

“됐어. 나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넌 너 알아서 해.”     


백유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톡!’ 고요해진 거실로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선이 그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선. 작은 적은 큰 적 앞에서 친구이지만, 선이 그어지는 순간, 그저 적이다.     


이원우는 빌라에서 나와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안정태한테 건 전화는 많았지만 걸려 온 것은 없었다. 원우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녹음된 안정태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에 원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리가 나는 쪽은 창고 쪽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진 원우는 꼼짝하지 않고 침을 삼켰다. 설마 하고 한 번 더 안정태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소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아궁이의 장작불은 꺼져있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 물속에서 두 손이 부딪치며 내는 박수 소리. 고장 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창고 안에서 들렸다.     




원우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용 비닐, 소쿠리들, 낫과 호미와 삽. 그 구석에 붉은빛을 잃은 물통이 놓여있었다. 소리는 그 물통 안에서 들렸다. 원우는 쭈그리고 앉아 물통을 들여다보았다. 낯익은 것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조금 전 옥수수 텃밭 옆에 놓여있던 양은 물통 속의 그것. 부글부글 거품이 끓는 액체 속에 들어있던 거뭇한 생물체.


원우는 손을 넣어 미끈대는 생물체 사이를 뒤졌다. 까끌한 것이 먼저 만져졌다. 원우는 무수한 돌기가 돋은 길쭉한 것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기도 했고, 뜯어낸 장어껍질 같기도 했다. 그의 팔뚝만큼이나 길고 얇은 것이 원우의 손바닥을 쓸고 미끄러져 물통에 달라붙었다.      


원우는 다시 손을 집어넣어 휘저어 보았다. 조금 후 손에 익숙한 것이 닿았다. 원우는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손에 잡힌 것을 꺼냈다. 손안에 든 것은 미키마우스가 웃고 있는 폰 케이스, 바로 안정태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 벨 소리가 창고 안 어둠을 두드리고 있었다.               


딱. 딱. 딱. 딱. 딱. 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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