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과 Mar 25. 2024

연재소설

“여보세요? 안정태? “

“너 누구야?”

“나야. 원우. 이원우. 내 목소리 몰라? “


이원우는 정태의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토록 똑같은 목소리로 자기를 흉내 낸다면 그건 괴물이다. 원우는 그렇게 정의했다.

전날 저녁 안개 속에서 만났던 정태를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백유리라고 했던 안정태와 지금 이원우라고 말하는 이 목소리는 동일인이다. 누굴까? 아니, 인간이 아니다. 이건 무엇일까?


“너, 이원우 아니잖아. 누구야?”

“나야. 나. 내가 이원우야… 끅... 나 …끅...”


소름 끼치는 소리가 말끝에 작게 들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원우는 창고의 물통에서 본 그 생물체를 떠올렸다. 미끈대고 거품이 잔뜩 낀 그 거뭇했던 생물체.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가 끊기자 안개 속에서 백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정태! 이원우!”


원우는 안개를 헤치며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손으로 안개를 헤쳐보았지만 하얀 물방울들은  흩어졌다가 다시 고였다.


“원우야! “


백유리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원우는 목소리를 향해 계속 걸었다. 어느새 땅의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하얀 아스팔트의 길이 잡풀과 흙으로 뒤범벅된 숲길로 변해있었다. “




“원우야! 나 좀 도와줘. “


갑자기 백유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원우는 울음기가 섞인 유리의 목소리를 따라 안개 속을 걸었다.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스팔트의 그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는 습하고 비릿한 성질로 바뀌어 있었다. 새벽에 고개를 들이밀고 보았던 우물 속의 그 냄새와 비슷했다.


“원우야! “


안개 속에서 백유리의 목소리만 들렸다. 절벽에라도 매달린 듯했다. 곧 떨어질 듯 간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잠깐!’

이원우는 걸음을 멈췄다. 지난밤, 백유리는 분명 안정태를 찾든 말든 상관 않고 이 섬을 나간다고 했다. 왜 백유리가 여기 있는 걸까?


원우는 다시 생각을 더듬었다. 조금 전 걸려 온 핸드폰 속의 목소리. 이원우에게 자기가 이원우라고 하던 그 목소리. 너무나 똑같아서 자기가 진짜 이원우가 맞는지도 의심하게 했던 목소리였다. 지금 이 안개 속에서 원우를 부르는 백유리의 목소리는 믿어도 되나? 저 백유리가 진짜 백유리는 맞는 걸까?


“이원우! 나 좀 살려줘. 부탁이야.”


‘백유리가 나한테 부탁한다고? 돈밖에 모르고 성공밖에 모르는 괴물이, 왜 이 안개 속으로 들어와? … 뭘 찾아서?’




원우는 주머니에서 다시 정태의 핸드폰을 꺼냈다. 미키마우스가 즐겁게 웃고 있는 핸드폰을 보며, 안정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떻게, 너도 해줄까? 내가 가진 거 풀면 백유리 기자님은 황은수만큼도 못 버틸 텐데? 해 봐?’


하얀 안개는 나무 사이사이를 휘감았다가, 초록의 나뭇잎 한 장 한 장에 앉아서 메마른 잎에 물방울을 맺히도록 했다. 바다에서 만들어진 안개는 숲을 바닷속으로 만들었고, 이원우는 심해에 가라앉은 잠수부가 된 것 같았다.


“원우야! “


하얀 안개 속에서 눈코입이 없는 해파리처럼 떠다니던 목소리가 선명해지고, 백유리가 원우의 앞에 걸어 나왔다.


“백유리? …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유리가 원우에게 다가오며 짜증을 냈다.


“너 찾아 나왔는데, 안개가 갑자기 밀려들었어. 분명 계단을 다시 올라갔는데… 야! 네가 나 불렀잖아. “


두려움으로 긴장한 유리의 얼굴은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황은수가 자기 사생활을 폭로하려 한다는 말로 정태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말이 사생활이지 사실은 교수와의 부적절한 관계였다. 덕분에 기자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 했다.


“내가 불렀다고? 확실해?“


원우는 백유리를 믿을 수 없었다. 믿어본 적도 없었다.


“불러놓고 왜 아닌 척해? 내가 헛소리한다는 거야? 거짓말 같아?”




그때, 두 사람 사이로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원우! 나 좀 도와줘. 제발 부탁이야. “


멀리서 원우와 유리에게 들려온 소리는 백유리의 목소리였다. 안개 속에서 들려온 자신의 목소리에 유리는 흠칫 놀라, 바로 앞에 서 있는 이원우를 바라보았다. 이젠 안개의 규칙에 익숙해진 원우는 멀뚱멀뚱 유리를 바라보았다. 백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원우에게 다가왔다.


“말도 안 돼. 저 목소리 뭐야?”


이원우가 뒤로 물러나려는데, 유리의 눈이 커졌다. 유리는 얼른 손을 뻗어, 원우가 들고 있는 정태 핸드폰을 낚아챘다. 미키마우스의 환한 미소를 본 유리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원우를 보았다.


“이거 정태 거잖아. 이게 왜 너한테 있어? 진짜 너야? 네가 정태 죽인 거야? “

“민박집에서 찾은 거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네가 황은수 동생이랑 나가고 계속 정태한테 전화했어. 찾았으면 내가 먼저 찾았겠지. 정태 왜 죽였어? 이거 때문에?”


백유리가 정태의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비아냥댔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원우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백유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왜? 네 아버지한테 그 영상 보낼까 봐? 하긴 편집 안 한 그 영상 나가면, 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파장이 크겠지. “


이원우는 그 순간 아버지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아들! 선을 그어 봐. 너는 그 선 위에 있어야 해. 그리고 나머지는 그 아래에 있어야 해. 그게 평화야.


“진짜 네가 죽인 거야? 설마 그다음은 나니? “


“여기에 오자고 한 건 너희야. 내가 말했잖아. 미친 짓이라고.”          


웨에에에엥웨에에에에엥.               


세이렌의 비명 같은 사이렌이 길게 울리자, 원우와 유리 앞의 안개가 점점 줄어들었다. 안개는 숲으로 밀려 들어와 더 깊은 숲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유리의 등 뒤로 보이는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 여객선을 타고 들어올 때 보았던 높은 낭떠러지 같은 산의 벼랑 끝이었다.     


“여긴 오는 게 아니었어.”     


이원우는 벼랑 끝으로 뒷걸음질하는 백유리에게 달려가 힘껏 밀어버렸다.


유리는 허공에서 팔을 허우적대며 파란 바닷물 속으로 떨어졌다. 안개가 시작된 그 깊은 바닷속으로, 우물보다 더 깊어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 소용돌이치는 바닷속에서 백유리는 아주 깊은 곳까지 가라앉을 것이다.

이전 14화 아침 안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