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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pr 08. 2024

에필로그/ 해파리

연재소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8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아침 안개 때문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고, 은채는 집에서 일찍 나왔다. 그 바람에 머리를 채 말리지 않아서 뒷목이 서늘했고, 빈속은 헛헛했다.


편의점이라도 들려야겠다 생각하며 지하에서 나오는데, 확실히 공기가 달랐다. 햇빛을 가려서인지 눅눅하고 매캐했다. 도시 전체를 뒤덮은 안개는 높은 곳에 멈춰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안개를 바라보고 있자니 섬에서 매일 듣던 그 사이렌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웨에에엥. ……웨에에엥. ……웨에에엥.     


그날 사이렌이 섬의 모든 사람들을 정지시켰을 때, 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을 은채가 제일 먼저 알았다. 엄마는 괜찮을 거라며 집안에 있었던 아빠와 은채는 이제 서로에게 말이 사라졌다.




서울역 앞의 고가도로를 걷던 은채는 난간 앞에서 멈춰 섰다. 안개가 제법 짙었다. 빽빽하게 솟은 높은 건물 모두 안개에 덮여 있었다. 도로조차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섞인 안개는 더 높아지려는 건물을 감춰주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감춰주었다.      


“너 보험 든 거 있잖아. 한 번만 도와줘. 은채야. 나중에 내가 꼭 갚을게.”     


은채는 점점 더 짙어지는 안개를 올려다보며 언니의 절박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러자 자신이 쏘아붙였던 말도 꼬리를 물고 쫓아왔다.      


“네가 싸지른 거, 네가 치워. 가족이 호구니?”     


그렇게 말했다.

은채는 매일 그날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자신의 입을 막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힘없이 돌아서는 언니의 뒷모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본다. ‘외로울텐데.’라고 말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안개낀 바다에 나가는 아빠를 본다.


안개에 가려진 갈색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20층이 넘는 건물을 보자, 7층에서 떨어졌다는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차 방지턱에 부딪혀 얼굴뼈와 코뼈가 다 깨지고 알아볼 수 없었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이 안갯속을 걷는 사람들은 알까? 누군가 이 안개 속에서 떨어져 사라진다 해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앞의 보도블록만 보고, 앞서 걷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듣는다면 안개가 끼든 끼지 않든 뭐가 다를까?      



뿌연 안개는 길을 지우고, 건물을 지우고, 사람들을 지워갔다. 은채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 안개 속에서 자기 자신도 지워질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 섞여 눈, 코, 입이 사라진 해파리가 되어 둥둥 떠다닐 것 같았다. 은채는 사진봉도를 떠날 때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남들처럼 살아.


여름은 끝났다. 뜨거웠던 바다는 점점 차갑게 변해간다. 여름만 되면 섬을 잠식하던 안개도 줄어든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은채에게 안개가 낀 날과 안개가 끼지 않은 날 모두 같았다.

여름의 바다와 가을의 바다가 겉으로 보기엔 달라도 바다는 언제나 바다였다. 겨울의 바다가 차갑게 얼어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해초는 조류에 휩쓸려 휘청거리고, 고래는 먹이를 먹기 위해 바닷물을 들이켤 것이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미세먼지를 머금은 물방울이 바람을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다르지 않았다. 출근하는 사람들도 앞만 보고 움직였다. 그 속에 섞여 은채도 겨우 취업한 직장을 향해 걸었다. 고가도로의 끝은 안개 때문에 흐릿했다. 그 흐릿한 도시 속으로 은채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안개 속의 은채는 또 한 마리의 해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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