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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 虛主

by 김사과


“낙화봉에 불을 붙였던 노비들이 증언했다. 두 선비께서 술에 취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았다더군. 사공도 같은 말을 했고.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해서.”

좌포청 종사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마주 앉은 호산월의 표정을 살피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게다가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곳이 옥사 안의 방이라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소리만으로도 오줌을 지리다가, 묻지도 않은 죄를 자백했었다.

죄인들의 소리뿐만이 아니다. 단오를 며칠 앞둔 더운 날씨에 옥에 갇힌 죄인들의 살이 썩고 있었다. 장을 맞고 터진 상처마다 구더기가 끓고 고름이 고여, 썩은 냄새가 옥사 안 여기저기 그득했다.

“퇴기인데 어찌하여 뱃놀이를 따라갔나?”

“두 선비님의 시신은 건졌습니까?”

“아직. 그보다 내 질문에 …”

종사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으로 포도대장이 들어왔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던 양반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다급히 들어온 포도대장이 호산월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무례하게 굴었다면, 용서하게. 뭐 하는가? 그만 보내드리게.“

“예? 영감,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종사관의 항의에 포도대장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종사관에게 다가갔다. 움찔하고 놀란 종사관이 뒤로 물러나자, 포도대장은 다시 미소를 띠며 호산월에게 얼굴을 돌렸다. 종 2품의 당상관이 천한 기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모친께서 한 번만 더 만나고 싶다, 간청하셨다네. 단오가 지나면, 송화루로 가마를 보내도 되겠지?”

호산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옥사를 가로지르는데, 죄수들의 앓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 속에서 유난히 이상한 목소리가 호산월의 발길을 잡았다.

“의원님, 약 좀 주세요. 아버님께서 열이 너무 심하세요. 제발, 약 좀 주세요.”

울음 섞인 소녀의 목소리를 쫓아 호산월이 걸어갔다. 종사관이 막으려 했지만, 포도대장이 손을 들어 종사관을 제지했다.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 곳은 죄인을 가두어 두는 옥방 안이었다.

옥방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소녀가 아닌, 60세가 넘는 흰머리를 늘어뜨린 남자였다. 심하게 매를 맞은 듯 무릎이며 등이 피투성이인 남자가 나무로 된 긴 칼을 목에 찬 채 겨우 앉아 있었다.


“어르신! 약 좀 주세요. 뭐든 하겠습니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할게요. 아버님 좀 살려주세요. 전쟁통에 어머님과 오라버니를 잃고, 남은 가족은 아버님뿐입니다. 어르신, 제발 약 좀 구해주세요.”



널빤지 구멍에 머리만 내놓은 노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울음이 베인 소녀의 것이었다. 호산월은 창백해진 얼굴로 피투성이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포도대장이 누구냐고 눈짓으로 묻자, 종사관이 대답했다.

“혜민서 침의(鍼醫)인데, 살인죄로 잡혀 왔습니다.”

“누굴 죽였는데?”

“정선방에서 사는 의원을 돌로 쳐 죽였는데, 얼굴이랑 머리가 터져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증인과 증거가 명백한데도 기억이 안 난다, 자기가 한 게 아니다, 그 소리만 합니다.”

호산월은 깊이 호흡을 내뱉은 후 옥방 앞에 앉아서 늙은 의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노인에게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듯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다정하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아줌마! 나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소녀의 목소리가 나오던 노인의 입에서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호산월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구역질이 나오는 걸 참으며 웃었다. 진짜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웃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또 물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도깨비들이 끌고 갔어요. 나는 항아리에 숨었어요. 배고파. 밥 좀 주세요. 배고파요. 너무 배고파요. 저 좀 살려주세요.”

호산월의 눈이 뜨거워졌다. 옥방 안의 노인 입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나오자, 종사관과 포도대장이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이 굳어졌다. 두 사람은 호산월의 뒷모습을 보며 다가가지를 못했다.

“도깨비들은 어떻게 생겼어?”

“머리에 뿔이 났어요. 긴 칼을 들고, 긴 총을 들고, 사람들을 죽였어요.”

“의원께서 도와주지 않았니?”



호산월의 질문에 노인은 눈을 감고, 입을 닫아버렸다. 피비린내와 쥐의 배설물 냄새가 뒤섞인 옥방에 바짝 다가간 호산월이 누군가를 불렀다.

“의원님, 계십니까?”

“나는 아직 죽지 않았소.”

혜민서 침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늙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호산월은 부들부들 떨면서 노인을 노려보았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어서 죽여주고 가시오. 여기는 너무 춥고 산짐승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소. 쿨럭쿨럭... 차라리 날 죽여주고 가시오. 쿨럭쿨럭... 저기 저기 보이시오? 늑대들이 내 살을 뜯으러 오고 있소.”

“이놈!!!!!!!”

호산월은 참고 참았던 것을 결국 뱉어냈다. 그 호통 소리에 놀란 것은 뒤에 있던 포도대장과 종사관, 그리고 옥리들이었다.


“숨지 말고 본모습을 드러내라. 더러운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데, 그 속에 숨으면 못 찾을까? 여긴 네 놈이 있을 곳이 아니야.”


호산월의 말이 끝나자마자, 피투성이의 60대 남자는 말을 멈추고 숨소리만 내뱉었다. 처음엔 숫돌에 칼 가는 것 같던 숨소리가 점점 커지며 짐승의 숨소리처럼 변하더니,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며 씹는 소리를 냈다.

“딱.. 딱.. 딱.. 딱..”

호산월은 떨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어야 했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던 종사관이 호산월의 뒤로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물러서세요. 저 안에 자리한 허주(虛主)가 다른 몸뚱이에 들어가면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눌러보겠지만, 실패하면 불로 태워야 합니다.”

당황한 종사관이 말을 더 붙이지 못하고 물러나자, 호산월이 늙은 의원을 다시 불렀다. 의원의 입에서는 여전히 짐승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은 풀렸고, 짚이 깔린 바닥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마다 힘이 들어가 손톱이 부러질 듯했다.

“딱.. 딱.. 딱.. 딱..”

“의원님! 그건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가죽입니다. 호랑이 가죽을 쓰고 계신 겁니다. 거짓에 속아서 그 말을 따르면 안 됩니다. 잘 살피세요.”

호산월은 옥방의 나무 창살을 잡고 의원과 눈을 마주했다. 망건 위로 산발이 된 흰머리가 붉은 피 때문에 엉켜있었다. 호산월이 가까이 오자, 의원이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이따 … 스이따 … 스이따 … 오나까 스이따 ….”

“의원님! 두고 갈 수밖에 없었어요. 죽어가는 사람은 너무 많았고, 배고픈 사람도 너무 많았고, 아픈 사람들도 너무 많았어요. 혼자서 다 살릴 수는 없는 거예요.”

호산월의 외침에 늙은 의원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다 … 버렸지. 당독역에 걸려 … 죽어가는 … 사람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숲에 … 버렸어. 온몸이 벌겋게 부어 살려달라고 … 잡는데 … 그 손을 밟았어. 배고파 우는 아이를 … 죽게 내버려 뒀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 그 아이가 …… 죽기를 기다리며 불을 피웠지.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달려들어 … 배를 채웠어.”

거기까지 말한 노인의 표정이 변했다.



“죽어라. 이놈. 너와 네 동료가 나를 범하고, 보리를 훔치고, 내 아비를 죽였다.”

소녀의 목소리가 먼저 흐르고, 다시 노파의 목소리로 말했다.

“늑대가 내 다리를 씹고, 까마귀 떼가 내 눈을 파먹었다. 나는 아직 살았는데, 나를 죽인 것은 역병이냐? 네놈이냐?”

의원은 손톱이 떨어져 핏물이 흐르는 손으로 자기 목을 졸랐다. 붉게 변해가는 얼굴의 의원이 아이 목소리로 흐느꼈다. 호산월이 나무 기둥 사이로 손을 뻗었지만 닫지 않았다.

“그건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가죽입니다. 의원님 잘 보세요. 의원님을 낭떠러지로 미는 귀신의 손입니다. 거짓말로 현혹하여 파괴하려는 원혼입니다.”


“물 좀 주세요. 저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늙은 의원은 힘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말했다. 호산월이 일어나 옥사에 걸린 횃불을 빼 들었다. 횃불을 들고 옥방으로 돌아서는데, 종사관이 그녀가 든 횃불을 뺏었다.


“아무리 미친 자라 해도 판결 없이 함부로 불태워 죽일 수는 없다.”

“지금 태우지 않으면 또 얼마를 죽일지 모릅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벌할 수는 없어. 옥사에 불이 붙으면 이 안에 갇힌 죄수들 모두가 죽겠지. 네가 하는 짓은 살인이고, 방화이며, 국가에 대한 반역이야.”


옥방 안에서 다시 음습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나까 … 스이따.”



의원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내보였다. 누런 이를 딱딱 마주치며 씹는 시늉을 했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눈과 코, 귀에서 붉은 핏물을 줄줄 흘러내렸다.


“제가 죽는다 해도, 저놈은 지금 없애야 합니다. 죄수들은 나리께서 밖으로 내보내세요.“


호산월이 횃불을 뺏으려 할 때, 의원이 구역질을 했다. 그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몸속의 내장이 다 터진 듯 왈칵왈칵 선지 같은 피를 토했다. 핏물이 나무판자를 타고 흘러 옥방의 바닥으로 고였다. 의원은 기분이 좋은 듯 빙그레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붉은 피가 배인 이가 음식이라도 씹는 듯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딱! 딱! 딱! 딱! 딱!”


그러더니 고개를 꺾었다. 가짜 주인이 빠져나간 주검은 쓸쓸하고 초라하기만 했다.


‘네 놈을 꼭 찾아낼 것이다.‘


호산월은 더러운 냄새를 찾아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포도대장과 종사관, 옥리들이 잔뜩 굳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옥방에 갇힌 죄수들은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하나같이 호산월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둘러본들 지금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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