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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살귀 水殺鬼

by 김사과


뜨거운 뙤약볕 아래 시커멓게 탄 사공의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흰수염으로 덥수룩한 사공은, 해가 저무는 강을 바라보며 노를 저었다. 차일을 친 나룻배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는 강물 위에서 유유히 잘도 흘렀다.


‘너무 오래 살았어. 죽을 때가 됐지.‘


노를 젓던 노인은 노을을 향한 눈길을 돌려 차일 아래 앉은 두 남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비단 도포를 걸친 두 양반 나리는 어린 기생이 따라준 창포주에 취해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김씨 그년의 아가리에 산 하나를 처넣고 받은 자리야. 궁궐 공사에 도움을 주어 고맙다더군.“


산호 구슬을 꿰어 갓 줄을 장식한 박창의가 옆에 앉은 어린 기생의 어깨를 꼭 끌어안으며 말하자, 마주앉은 송석이 맞장구를 쳤다.


“포천 현감이면 6품이니 나쁘지 않지.”

“하긴. 자네는 아직 7품이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닌 것을 송석이 모를 리 없다. 송석은 술잔을 입에 대며 웃다가 흘러가는 물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가 지는 강물은 반짝이는 물결로 눈이 부셨다. 하지만 정말 눈부신 것은 친구 박창의 옆에 앉은 어린 기생이었다. 숟가락에 민어 완자를 담아 박창의 입에 넣어 주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싱그러웠다. 송석은 고개를 들어 배 끝에 앉은 늙은 기생을 바라보았다.


“퇴기이긴 하나 뱃놀이를 가시려면 이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행수기생의 말이 맞았다. 퇴기는 초여름의 낙조 아래서 붉게 물들어가는 얼굴로 생황을 불었다. 새소리 같은 음률은, 저절로 눈을 감고 손으로 박자를 타도록 했다.


생황의 소리가 닿는 것마다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절벽에 앉은 새들이 날아오르고, 물 위의 윤슬이 생황의 소리에 맞춰 반짝이고, 물결이 일렁거렸다.


“나리, 물이 정말 시원합니다.”

“다 벗어던지고 들어가 보련?”


손을 뻗어 나룻배 아래의 강물을 만지는 어린 기생이 까르르 웃었다. 소녀의 손을 훑으며 지나가는 물결이 부드럽고 시원했는지, 그녀의 몸이 점점 더 강물에 가까워졌다. 그럴수록 소녀의 등은 저고리 아래로 속살이 보일락 말락 하고, 목덜미에 돋은 솜털이 바람에 날렸다.


송석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어린 기생의 목덜미에 손이 닿을 듯할 때 퇴기의 연주가 멈췄다.


“동아야 …….”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어린 기생이 몸을 펴고 바르게 앉았다. 당황한 두 남자가 배꼬리를 돌아보았다. 생황을 든 퇴기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두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리,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떠한지요? ”

“너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더라?”


박창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생황을 든 퇴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인은 호산월이라고 합니다.”

“금산이의 권유가 있어 데려왔을 뿐 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고 연주나 계속해.”

박창의가 쏟아내는 가시 돋친 말에도 호산월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삭월이 뜨는 날은 음기가 강합니다. 물도 음기가 강한데, 밤이 되면 그 음기가 더욱 강해지니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답니다.”


“네가 지금 작정하고 나의 선유 놀이를 망치려 드는 것이냐?”


박창의가 흥분하여 한 걸음 나아가자, 배가 좌우로 흔들렸다. 송석은 어린 기녀에게 턱짓을 하며 말리라는 눈치를 주었다.


“이 강 주변이 다 우리 가문의 땅이야. 이쪽 산도, 저쪽 산도 다 우리 것이야. 임금이 사는 궁궐의 기둥이 어디서 난 줄 알아?”


어린 기생이 일어나서 박창의 팔을 잡고 살짝 기대며,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나리! 앉아서 술 한잔 드세요. 제가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박창의가 자신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어린 기생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바라보는 어린 기생은 오싹함을 느꼈으나, 그저 웃기만 했다. 그녀를 따라 박창의가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좀 전까지 짓던 따뜻한 웃음이 아니라, 제 마음대로 된 것이 즐거운 득의양양함이었다.


“동아야!”



호산월이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송석이 치마를 잡아당기고, 박창의가 밀자 어린 기생은 어찌해 볼 새 없이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강물에 떨어진 기생이 두 팔을 허우적대며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려 했다.


두 양반은 배에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서로의 잔에 술도 따라주며, 그림을 구경하듯 강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듯, 허우적대는 기생을 구경했다. 늙은 사공의 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박창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 강물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대는 소녀는 점점 더 지쳐갔다. 겹겹이 입은 치마저고리는 물에 젖어 그녀를 휘감아 물속으로 끌어들이기만 했다. 무거운 트레머리마저 푹 젖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도록 했다.


“살려주세요. 헙...살려...제발...”


눈을 희번덕이며 그 광경을 바라보던 두 남자는 갑자기 들려오는 생황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동아라는 어린 기생이 물속에서 죽어가는데, 퇴기 호산월은 생황을 불었다. 그런데 새소리 같던 생황의 소리가 이젠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가체도 하지 않고, 쪽머리에 비취로 만든 작은 비녀 하나만을 꽂은 나이 든 퇴기는 어린 기생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끝에 서서 어린 기생을 죽이고 있는 두 남자를 내려다보며 생황을 불었다. 당황한 것은 젊은 두 양반이었다.


“저거, 저거 미친년이 아닌가?”



어느새 강 주위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허우적대던 어린 기생은 물속으로 사라졌고, 수면은 잠잠했다. 귀신의 울음 같은 생황 소리가 멈추고, 호산월이 두 남자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이셨소? 몇 명이나 이 강에 제물로 바치신 게요?”


“죽이다니. 천한 기생년이 뱃놀이하다가 저 혼자 물에 빠져 죽었을 뿐이야. 나이 든 년이 어린 기생을 구하려 뛰어들었다가, 물귀신 밥이 되었다고 하면 누가 의심하겠어?“


박창의가 일어나 늙은 기생을 향해 다가왔다. 그 뒤에 앉은 송석은 점잖은 척 두 사람을 구경했다. 송석이 박창의와 호산월을 바라볼 때, 사공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강물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보았다.


“나는 곧 포천 현감이 될 몸이야. 기생 같은 천한 년들을 누가 가여워하기라도 할까? 꿩 한 마리 화살로 꿰어 잡는다고, 개 한 마리 몽둥이로 때려잡는다고, 어느 한 사람 손가락질이라도 할 거 같아?”


송석은 배에 앉아서 오랜 친구가 하는 말을 들었다. 함께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달라진 것이 없는 친구를 보며 따분한 표정으로 나룻배 밖을 바라보았다. 강의 밤바람이 시원하게 다가왔다. 강가의 얕은 물속에 장대를 여러 개 꽂아놓은 것이 보였다. 장대마다 줄을 잇고, 줄에는 낙화봉이 다닥다닥 걸려있었다.


“곧 불이 붙을 거 같아. 빨리 처리해.”


송석은 배의 난간에 팔을 걸친 채 술잔을 들며 친구에게 고함쳤다. 그러는 동안 자기에게 무엇이 다가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저 오늘따라 물비린내가 심하다. 비가 오지 않아 강물이 탁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창포주를 들이켰다.



박창의가 호산월을 향해 걸었다. 강물을 바라보는 호산월의 눈은 슬펐다. ‘저년도 죽는 것이 두려운 게지. 오냐, 내가 죽여주마.’라며 박창의 얼굴에 화색이 돌 때였다.


”아아악!!!“


다급한 친구의 비명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물속에서 나온 시퍼렇게 얼룩진 팔이 송석을 잡아서 물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는 송석이 난간을 잡았지만 소용없었다. 물속에서 나온 또 다른 팔이 그의 옷을 잡고, 머리를 잡았다. 팔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속에서 부패한 얼굴과 머리카락이 수면으로 올라와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도포를 움켜쥐고, 소매를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살려줘. 제발 나 좀 살려줘.”


송석이 애걸하며 손을 뻗었지만, 박창의는 다가가지 않았고 사공은 눈을 감고 바들바들 떨었다. 물속에서 솟아오른 또 다른 손이 송석의 풀어진 상투머리채를 잡았다. 또 다른 손은 송석의 눈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송석은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배 안은 고요해졌다. 박창의는 사공과 늙은 기생을 번갈아 보더니 배의 가운데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강가에서 기다리던 하인들이 낙화봉에 불을 붙였다. 불붙은 숯가루가 떨어지며 물 위로 불꽃이 흩날렸다.


하지만 박창의 눈에는 친구가 끌려 들어간 검은 강물만 보였다. 박창의는 사공 쪽으로 걸으며 호산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기생년은 요괴가 분명하다. 수살귀야. 물귀신. 빨리 밀어버려.”

“나리, 이 강물에 빠트려 죽인 이가 몇인지 아십니까? 저는 이제 두렵습니다.“


박창의는 사공이 제 말대로 하지 않자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사공이 뱃머리에 선 채 깜깜한 강물 위로 떨어지는 붉은 불꽃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떨어지는 불이었고, 떨어지는 꽃이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이 강에서 죽은 게 한둘이야? 역모를 피해 도망가던 죄인들이 절벽에서 떨어지고, 역병에 걸린 환자는 산 채로 버려졌어. 굶주림이 심해 먹일 입을 줄이려고 자식을 강에 던져 죽이는 것도 보았어. 전란에 어땠는지 알아? 군인이고, 의병이고 할 것 없이 목이 잘린 채 팔다리가 잘린 채 떠내려갔어.”


박창의는 사공과 퇴기에게서 도망치려는 듯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보니 물속에서 올라온 검은 머리카락을 보지 못했다. 물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물 위로 넓게 퍼졌다.


“어차피 죽어!”


천천히 물속에서 올라온 것은 창백한 얼굴의 송석이었다. 피가 흐르는 눈은 눈알이 사라져 움푹 파이고, 보랏빛 입술을 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손이 나룻배 가까이 와 강바람에 나풀대는 길고 긴 비단 도포를 잡았다.


“어차피 너희 같은 것들은 의미없이 죽게 돼 있어. 이 나라에 희망 같은 게 있는 줄 알아? 어차피 죽어. 다 죽는다고.”


박창의 도포 자락을 잡은 송석의 힘은 당해낼 수 없었다. 떨어져 나간 입술 사이로 이가 드러나고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박창의를 물속으로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물속으로 들어간 박창의는 두어 번 허우적거렸지만, 그의 아름다운 도포를 잡은 송석의 손이 그를 메말라가는 강의 가장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곧 잠잠해진 물 위로 어린 기생의 몸이 떠올랐다. 퇴기는 얼른 배의 난간으로 가서 아이의 옷을 잡고 끌어당겼다. 배 가까이 다가오자, 사공이 함께 어린 기생을 건져주었다. 죽은 듯 보이던 어린 기생은 목구멍을 막고 있던 물을 뱉어내고 숨을 쉬었다.


“동아야. 괜찮아?”



동아라고 불린 어린 기생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사공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 저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말리지도 못하고, 강으로 뛰어들지도 않았어요.“


다 떨어진 불꽃이 사라지자, 강은 이제 어두웠다. 퇴기는 어린 기생의 등을 두드려주며 불꽃이 가라앉은 강을 바라보았다.


“올해도 흉년이 심하니 죽어 나가는 목숨이 이 물속의 수살귀보다 많아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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