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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肝 먹이기 (2)

by 김사과


웃음을 가리고 있던 호산월의 길고 가는 손이 얼굴에서 내려왔다. 그녀의 손은 섣달의 보름달빛보다 희고 차가웠다. 그 하얀 손으로 동물의 생간을 들어 주막 여주인에게 쓰윽 내밀며 장난스레 다시 물었다.


“이것이 혹여라도 사람의 생간이면 어찌 되는 건가?”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주시하는데도, 호산월의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뒤집어 놓은 솥뚜껑 위에서는 녹두전이 타느라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사람 간을 먹었다는 거야?”


수염이 덥수룩한 손님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두 남자 앞의 소반에는 핏물만 남은 빈 접시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의 입가 수염에도 핏물이 언뜻언뜻 보였다. 호산월은 그의 고함을 무시하고 옆에 앉은 매골승을 바라보았다. 호산월이 처음으로 자신을 주시하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앞에 있던 술그릇을 들어 마셨다.


“스님께선 법명이 무엇입니까?”


생각 못 한 질문에 매골승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보원이요.”

“몇 살에 출가하셨습니까?”


“내 아버지는 회자수였소.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더군. 어느 날부턴 가는 술을 마시고도 잠을 잘 수가 없다며, 나를 절로 보냈소. 사람 죽이지 않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라셨는데, 그게 다섯 살 때던가?“


보원이라는 법명을 가진 매골승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호산월을 바라보지 못했다. 호산월은 그의 말에도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보원 스님께서도 이 간을 드셨지요?”




매골승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숨을 내쉬었다.


“전쟁 때, 나는 승군이었소. 평양성에서 벌떼처럼 몰려드는 왜군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웠지.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소. 정말 많이 죽었어. 시신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죽었소. 열 걸음을 걸으면 팔다리 잘린 시신이 널려 있었지. 그런데, 왜놈 손에 죽은 사람보다 그다음 해 기근으로 죽은 이들이 더 많았소. 세 걸음을 걸으면 뼈밖에 안 남은 시신들이 발에 차였으니까.”


호산월의 질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이 생간을 드셨습니까?”

“전쟁 때문이야!”


매골승이 버럭 하고는 마루에서 일어났다.


“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성을 지키기 위해 왜병의 목을 베었어. 난 성을 지켰고, 동료를 지켰고, 백성들을 지켰어. 그런데 … 왜병은 무섭지 않았는데, 배고픈 것은 이길 수가 없었소. 먹지 않고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었으니까. 뭐든 먹어야 했지. 뭐든!”


호산월을 향했던 주막 안 사람들의 시선이 매골승을 향했다. 매골승은 옆에 서있는 파란 옷의 주막 숙수를 먼저 보았다.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땅에서, 청야 작전으로 다 불타버린 논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매골승의 시선이 마루에 앉은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남자를 향했다.


“내가 먹어야 왜병 한 놈이라도 죽일 수 있지 않겠나? 나라가 작살나게 생겼는데, 굶어 죽는 것이야말로 개죽음이지.”




매골승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호산월은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눈웃음과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핏물보다 잔인하고 칼날보다 날 선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어떤 동물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생간을 드셨소? 보원 스님?“

“먹었소. 하지만, 술에 취해 뭔지도 모르고 먹었소.“


“처음은 그렇다 칩시다. 두 번째는 맛에 취해 드시고, 세 번째는 생간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와 술 핑계로 드시고, 네 번째는 죄짓는 것을 알면서도 드셨소?”


매골승 보원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호산월을 바라보았다.


“소의 간이나 돼지의 간이겠거니 … 그랬소.”

“흐흐흐흐흐흐!”


호산월은 또다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가린 것이 무색할 만큼 웃음소리가 모두에게 밀려갔다. 웃음을 멈춘 호산월이 마루 위의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손을 보니, 곡괭이를 잡는 손인 듯한데, 곡괭이로 논밭을 일구는 대신, 무엇을 파내는 것입니까?”


두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호산월을 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휴, 이 손님. 술 한 잔에 취했네. 취했어.”


여주인이 말리는데, 호산월이 일어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술병을 잡은 호산월이 나이 많은 남자에게 먼저 따라주고, 어린 남자의 술잔도 채워주었다. 매골승은 마당에 서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지켜보았다.




“잘 생각해 보시오. 어느 날인가 부지불식간에 여우의 귀를 잘라낸 적은 없소?”


놀란 두 남자만큼이나 매골승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우라는 짐승은 논밭으로 내려오지 않지요. 먹이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파먹는지라, 마주치게 된다면 분명 … 무덤을 파낼 때겠네요. 제 말이 맞지요? 무덤을 파서 망자의 옷이든 아니면 부장품이든 가져다가, 곡식을 사고 땔감을 사고. 그러다가 마주친 여우를 잡아서 어떻게 했소?”


수염이 덥수룩한 손님이 이를 악물고 눈을 부라렸다. 어린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슬쩍슬쩍 동행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비어있는 접시를 보았다. 아직 핏물이 남은 빨간 접시를 보다가 구역질이 밀려오는지 손으로 입을 막으며 뛰쳐나가 웩웩거렸다.


“왜 하필 귀를 자르셨소?”

“무슨 소리야? 네가 봤어?”

“습관이라는 게 무섭지요. 땅을 파 봤으니 땅을 파고, 남의 옷을 빼앗아 봤으니 또 빼앗는 거겠지. 귀를 잘라보았으니 귀를 잘랐겠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호산월의 멱살을 잡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입 닥치지 못해?”


그런 말에 물러설 표정도 목소리도 아니었다.


“전쟁이 참 무서워요.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하니.”




그렇게 말한 호산월의 눈이 슬쩍 매골승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매골승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너머로 어린 남자는 먹은 것을 토해내려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었다.


“널린 게 죽은 시신이니 칼 한 자루만 있으면 귀를 잘라다가 팔 수 있지 않소.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병은 잘린 조선인 귀의 값을 얼마로 쳐주었소?”


호산월의 멱살을 잡은 두툼한 남자 손이 부들부들 흔들렸다. 호산월이 그의 팔을 잡아 떼어내고, 매골승을 바라보았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목소리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살얼음이 낀 바람만큼이나 매몰찼다.


“보원 스님! 광희문 너머는 참 슬프지요? 동물에게 뜯긴 뼈는 왜 그리 많고, 산 채로 버려진 병자들은 또 왜 그리 많고, 시체의 눈을 파먹는 새떼들은 왜 그리 많은지. 어느 하나 불쌍하지 않은 주검이 없겠지요?”


매골승의 입에서 깊은숨이 나왔다. 어두운 밤 속으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호산월이 일어나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여우를 죽이셨소? 홧김에? 인간이 불쌍하여, 여우를 죽인 겁니까?”

“그저 … 겁을 주려고. 그냥 … 꼬리를 잘랐을 뿐이오.”


호산월은 동물의 생간이 담긴 접시 앞에 앉아서 여주인을 향해 그 접시를 들어 내밀었다. 빨간 생간이 여주인의 코 앞에 놓이자, 죽일 듯한 눈빛을 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호산월은 그녀에게 접시를 더 움직이며 물었다.


“이 간은 그래서 어떤 짐승의 간일까?”


여주인이 아무 말 없이 호산월을 노려볼 때, 파란 옷을 입은 숙수가 부엌으로 들어가서 나오더니, 식칼을 마루에 꽂았다. 호산월의 치맛자락을 뚫고 반이나 들어간 식칼이 나무에 깊이 꽂혔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먹어 봐. 이게 사람의 간인지, 아닌지 네년이 직접 먹어 보고 맞추면 되겠구나. 얼른 먹어. 먹어서 맞춰야 할 것이야. 만약 틀리면 여기서 절대 돌아갈 수 없어. 먹어. 먹어!!”


숙수를 바라보던 호산월은 접시에 든, 핏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빨간 간을 바라보았다. 매골승도 여주인도 호산월이 그걸 먹는지 안 먹는지 지켜보았다.


“흐흐흐흐흐흐 …”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흐르다가 이번엔 접시를 숙수에게 내밀었다.


“이게 사람 간이면, 사람이 아니라 여우에게 주어야지. 잘린 꼬리가 아깝고 분한 것은 이해하오만, 사람에게 사람 간을 먹여 득을 볼 게 뭐가 있소? 기근을 지나며 사람 고기 먹은 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그러니 이건 …”

호산월은 자기 치마 위에 꽂힌 식칼을 빼고 말을 이어갔다.


“여우의 간이겠지.”


식칼을 든 호산월이 다시 여주인을 바라보았다.


“여우의 간을 이자들에게 먹여, 여우짓하게 한 다음 시체를 파먹게 만들려는 거 아닌가?”


호산월은 식칼 든 팔을 높이 들었다가 여주인의 쪽빛 치마 위로 내리꽂았다. 식칼은 그저 치마에 꽂혔지만 여주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쪽빛 치마 아래, 붉은 피가 마루 위로 흘러내렸다. 비명은 끊어지지 않고, 피도 멈추지 않았다. 수염이 덥수룩한 손님도 마루에서 내려와 멀찌감치 물러났다. 숙수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발버둥치는 여주인에게 가서 식칼을 빼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 꼬리. 내 꼬리.”

“당신 도대체 누구요? 무슨 힘으로 이런 짓을 한 것입니까?“


숙수는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호산월에게 물었다. 호산월은 마루에서 일어나며 치마를 털었다. 마루 밑에 둔 검은색 당혜를 신고 남바위를 고쳐 썼다. 그런 다음 인간인지 요괴인지 알 수 없는 주막의 두 남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잘 생각해 보게. 분풀이를 하자고, 몇 마리의 여우를 죽였는지. 그 간이 누구의 것인지, 우리에게 중요한가? … 그대들에게 중요한가?”


호산월이 매골승과 도굴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꼭 내줘야 하는 법입니다.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먹었으니, 그 맛을 알았으니, 먹기 싫은 것을 먹게 될 것입니다.”


호산월은 주막을 나서 배오개의 고개를 넘었다. 오른쪽으로는 왕들을 모신 종묘가 깊이 잠들어 있었고, 왼쪽으로는 거지들이 숨어 사는 개천이 흘렀다. 운종가는 어느새 등불을 껐고, 등불을 끄자 하늘의 보름달은 더욱 빛이 스산했다. 몇 걸음 걷던 호산월이 캑캑거리다가 빨간 핏물을 토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내줘야지.”


소매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고,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호산월은 피 묻은 손수건에 수 놓인 노란 나비를 보고는 배시시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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