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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얀 꽃을 셌다
언젠가 시들 이 슬픔을 셌다
목이 잘린 흰 국화의 꽃잎을 만져보고
생명이 남은 죽은 꽃을 조용히 위로했다
하얀 꽃은 여전히 희고 부드럽고 반짝였다
검은 줄에 내린
하얀 글자를 읽고 또 읽었다
생명 없는 글자들이
생명 없는 꽃이
죽음을 장식했다
꽃이 시들어갈 시간을 셌다
이틀 혹은 삼일도 채우지 않고
불태워질 그리움을 헤아리다 그만뒀다
차라리 숟가락을 헤아리자
남은 커피믹스도 좋다
뜯지 않은 종이컵을 헤아리다 그만뒀다
향을 다 꽂아보지도 못하고
촛불은 다 태워보지도 못하고
꽃이 채 시들기 전에
위로는 끝났다
꽃을 셌다
목이 잘린 흰 국화를
하나하나 세다가 잊었다
몇 송이였나 기억나지 않았다
흰 글자들이 흘러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내렸다
흰 가루가 흘러내리고
시간이 흘러내리면
꽃은 어디선가 목이 또 잘리고
마지막 남은 짧은 생명으로
이 죽음을 위로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