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아래 커피숍이 하나 있다. 바리스타인 30대의 여사장님은 항상 검은 옷차림에 덩치가 커서 겉모습만으로는 그다지 아름답다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녀가 누구보다 아름답다. 그건 커피숍 구석구석을 차지한 화분들 때문이다.
그 화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 필요해진 후였다.
다용도실의 쓰레기들을 모두 내다 버리고 나자 서늘한 곳에 지어놓은 거미집이 드러났다. 빈 집이 아니었다. 거미도 한 마리 살고 있었다. 혼자인 줄 알았던 집에 살아있는 또 다른 생명이었다. 치울까? 내버려 둘까?
사실 살아있는 거미가 조금 반가웠다. 고요한 집이 무섭던 참이었고, 집에 들어오면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는 게 일상이었다. '거미는 해충을 잡아먹어.'라던 말도 생각이 났다.
그러다 점점 늘어나는 거미줄이 떠올랐다. 다용도실에서 거실로 안방으로 점점 침범해올 거미를 상상해 보고 나는 바로 결정을 했다. 물티슈로 거미집을 깔끔하게 제거한 후, 거미를 골목 밖으로 쫓아냈다. 대신 살아 있는 다른 것을 입양하기로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돌봐줄 자신이 없었다. 목욕을 시키고 산책을 시키고 먹이를 주는 루틴은 그만하고 싶었다. 열대어를 생각해 보았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먹이나 산소나 물 때문에 죽은 열대어가 어항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본다면 충격이 클 것 같았다.
그러다 떠오른 게 식물이다.
마침 집에는 빈 화분이 9개나 있었다. 화분 안에는 썩은 흙이 가득했지만, ‘어차피 화분도 있는 걸?’하고 나는 곧 식물 입양을 준비했다.
입양의 조건은 간단했다.
1. 그냥 둬도 잘 자라는 식물일 것
2. 햇빛을 많이 안 받아도 되는 식물일 것
3. 너무 많이 자라지 않는 식물일 것
그렇게 해서 결정한 식물이 아이비, 스킨답서스, 호야였다. 나머지 작은 화분에는 씨앗을 심기로 했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정 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썩은 흙을 버리고, 화분을 씻어 말리고, 너무 무거운 화분은 버렸다. 싱싱한 흙과 거름을 샀는데, 식물보다 흙이 더 비쌌다. 다이소에 들려서 씨앗도 샀다. 봉숭아와 바질 씨앗을 사서 쇼핑카트를 끌고 집에 도착하자 벌써 지쳤다. 식물을 옮겨 심을 때는 즐거웠던 마음이 조금 줄어들고, 밀린 숙제가 되어 있었다.
과정의 기쁨은 생략한 채 흙을 담고 식물을 옮겨 심었다.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서로 심다 보니 씨앗은 흙 속에 대충 뿌렸다. 그런 다음 할 일을 다 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물을 넉넉하게 주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뿌듯했다. 집 안에 초록빛 활기도 느껴졌고, 생기가 돌았다.
이제 가끔 물만 주면 오랫동안 옆에서 그 활기와 생기를 전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귀찮게도 안 할 거고, 물고기처럼 신경 쓰이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제일 먼저 봉숭아를 심은 화분에 문제가 생겼다. 봉숭아는 발아를 하지 않았다. 바질은 싹이 올라왔는데 봉숭아는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그 화분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다음엔 바질이 문제였다. 싹이 올라오고 키도 자랐다. 그쯤 되면 먹어야 하는 식물인데 난 한 줌도 안 되는 바질을 먹고 싶지 않았다. 클 만큼 큰 바질은 점점 허리가 휘더니 자신의 생을 다 했다.
그다음은 아이비였다.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는 그 아이비의 긴 줄기에서 잎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아침마다 아이비의 떨어져 나가는 잎을 보며 뭐가 문제일까? 물이 부족한가? 그런 고민에 대한 처방으로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러자 흙에 하얀 곰팡이가 생겼다.
가장 편한 식물이었다. 손도 안 가는, 가장 관리하기 쉽고 혼자서도 산다는 식물이었다.
난 속은 기분이었다. 귀찮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귀찮았다. 내가 식물을 죽이고 있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식물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인간이잖아, 라는 자기 비하까지 고작 화분 5개에 나는 수많은 감정을 느껴야 했다.
그때부터 학원 아래 커피숍의 화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고 싱싱하고 건강한 식물들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커다란 화분부터 컵에 담긴 작은 식물과 토분에 자라는 선인장까지 모두가 거짓말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난 화분을 직접 관리한다는 사장님께 물었다.
“식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환기와 햇빛이요.”
그 대답을 듣고 난 암기라도 하려는 듯 되뇌었다. 사장님은 원두를 갈면서 잠시 생각하시다가 웃으며 덧붙였다.
“찬찬히 바라보셨어요? 잘 보면 뭐가 필요한 지,
어떤 기분인지가 보여요.”
식물의 기분이라고? 표정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데 어떻게 기분이 보이지? 그러다 기억해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살아있는 것'임을.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을 나눌 수 있고, 위로가 되고 보살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집에 온 아이들은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잎을 떨구며 아프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해 살아있었다.
난 처음부터 이기적이었다. 나를 위해서였고, 내 집에 들어온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 끝 집의 담 아래에 핀 수선화를 보았다. 담 밑 손바닥만 한 공간에 심은 수선화의 노란 꽃 옆에 ‘뽑지 마세요.’라고 쓴 팻말이 꽂혀있었다.
누가 뽑아갈 것이 싫다면 화분에 심어 거실에 두어도 될 텐데, 담 밖에 심은 주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참을 보니 수선화는 행복해 보였다. 바람도 통하고 흙도 촉촉하고 햇빛은 하루 종일 내리쬘 것이다.
난 남은 두 개의 화분에 물을 적당히 주기 시작했다.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두고 아침마다 충분히 빛을 쬐게 해 주고 창문도 꼭 열어두었다. 아직 추웠지만 환기는 꼬박꼬박 했다.
아침에 창문을 열자 햇빛이 스킨답서스와 호야 위로 반짝였다. 예뻤다. 다른 집 꽃과 다른 의미로 예뻤다. 함께 살아보자고 했으니 가장 따뜻하게 바라보아야겠다. 찬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