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by 김사과

장례식 때문에 앨범을 넘기다가 오래된 사진 하나를 찾았다. 사진 속에서 야구점퍼를 입은 귀여운 소녀가 덧니를 드러낸 채 밝게 웃고 있었다. 얼굴은 볼살이 통통하고,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쌍꺼풀이 귀여웠다.



몇 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친구의 모습은 이 사진과 너무나 달랐다. 5년 동안 위암으로 고생한 친구는 비쩍 말라서 눈에 초점이 없었다. 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관을 꽂아 배설시키고, 먹지 못하니 여러 개의 수액 줄이 뒤엉켜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나에게 준다고 게토레이를 꺼내 따라주었다. 노란 액체를 담은 종이컵을 받아 드는데, 친구는 몽롱한 상태로 말했다.


“나 그거밖에 못 먹는데.”

“이거 마실래?”


친구는 고개를 흔들며 손으로 다리를 문질렀다.


“다리가 너무 간지러워. 기운이 없어서 못 긁겠어.”




나는 뼈만 남은 가느다란 친구의 종아리를 문질러주었다. 친구의 얼굴에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기쁨도 슬픔도 반가움도 없었다. 눈물까지 다 말라버린 듯한 얼굴을 보자, 처음 친구가 전화해서 위암이라며 울던 때가 떠올랐다. 겨우 5년 전이었다. 친구는 괜찮아질 거라며 이겨낼 거라고 했는데, 그 희망은 점점 꺾여서 병원의 일인실에 와 있었다.


한 달도 안 되어 친구 딸의 전화가 왔다. 아직 어린 딸은 친구의 죽음을 담담하게 전해주었다.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모든 것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함께 자던 것, 친구 집에서 함께 시험공부하던 것, 친구 엄마의 김밥과 작은 방과 이불.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 나누던 편지, 내 이름을 써주고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써주었던 그 편지들이 떠올랐다.


누가 이만큼 사랑해 주었을까?


오래된 앨범에서 찾아낸 고등학생 때의 친구 사진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는지 떠오르게 했다.



그녀의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 고등학생 때를 기억한다.

친구의 첫 직장이 있던 동네를 지나가면,

여전히 그녀를 떠올린다.

결혼할 사람을 소개했던 그 카페는 사라졌지만,

결혼식을 올렸던 날과

집들이를 도와줄 때 만들었던 호박전,

딸을 처음 낳았을 때 남편을 닮았다고 나누던

대화를 기억한다.

남편과 싸웠다고 우는 친구를 데리고

노래방에 갔던 것을 기억한다.

딸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둘이 누웠던 곳에 셋이 누워 떠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너의 웃음을 내가 기억하고,

너의 눈물을 내가 기억하고,

평범하게 늙고 싶다던 너의 꿈

늙으면 둘이 여행을 가자던 너의 꿈

옆집에서 살자던 너의 꿈

나는 너를 기억한다

친구는 너 하나였고, 이젠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벚꽃이 피었고, 또 벚꽃이 지고 있다.


지는 벚꽃은 늘 아쉽다. 떨어지는 벚꽃은 봄이 지나가는 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물론 내년에도 벚꽃이 피겠지만, 지금은 지는 벚꽃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참 아름다웠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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