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괜찮겠어?”
괜찮다고는 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콩알만 해졌다. 첫 해외여행에 자유여행이고 혼자 여행인데,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아프면? 다치면?
나의 두려움을 제어할 수 있을까?
“관광 온 사람들 절반이 한국인일걸요?“
그 말이 맞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니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풍경 사진만 찍다가 돌아올 것 같았다.
게다가 행복하자고 시작한 여행인데, 나를 위한 시간을 갖자던 처음의 목적은 점점 희석되고 해야 할 숙제만 산더미다.
여권과 항공권은 가장 쉬운 난이도였다. 교통, 기후, 환율에다가 지역 문화까지 체크해야 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왜 그렇게 많은 걸까? 사야 하는 것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가입해야 하는 어플과 미리 신청해야 하는 것을 적다가 지쳐버렸다.
“눈이 … 이걸 언제 다 하지? …라고 하면,
손이 … 내가 다 하지. …라고 한대.”
어느 순간,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글을 쓰고 싶어.”
“해 봐. 하고 싶은 거는 하고 살아.”
엄마의 말은 늘 긍정적이었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닥친다. 시련이라고 해도 좋고, 위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부모에게 들어온 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느 날 언젠가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 나를 움직이게 하는 말은 엄마가 해 준 말일 것이다.
나는 늘 다정한 말을 들어왔다.
괜찮아.
잘했어.
너는 진짜 똑똑한 거 같아.
이렇게나 부족한 나한테 엄마는 항상 다정했다. 치매로 아플 때도 같이 춤을 추었고, 마지막 사진을 미소로 남겨준 건 엄마였다.
걱정의 목록을 채우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을 만들어야지. 그게 엄마에게 배운 거니까. 웃는 것도, 예쁘게 말하는 것도 엄마에게 배웠으니까. 예의와 배려도, 필요할 때 용기를 내는 것 역시, 엄마를 지켜봐 온 내내 당연한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플라스틱 대야에 가득히 들어있던 마늘이 생각난다. 그 많은 마늘을 엄마와 마주 앉아 까기 시작할 때, 한숨부터 쉬며
“이걸 언제 다 까?”
라고 했던 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다.
“눈이, 언제 다 까나? 할 때, 손은, 내가 다 깐다. 하는 거야.”
미리 걱정하는 습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내가 너무 웃겼다. 나이를 먹었는데, 하나도 안 변했다.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다치거나 아플 수도 있다. 겁이 잔뜩 나서 불안해지거나 혼자라서 위축될 것도 같다. 그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순간 분명 현명할 것이다.
엄마에게 다정한 말들을 들아왔기 때문이다.
소소한 에세이를 읽어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시고, 댓글까지 써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행복 찾기는 잠시 중단하고, 소설을 쓰러 동굴로 들어갑니다. 또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뜨거운 여름 뜨겁게 살아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