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비언어

by 김사과


비가 온다. 아무 말도 없는 거리를 걷다 보면 빗소리가 들리고, 빗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빗물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을 본다. 먼지 가득했던 벤치를 빗물이 씻어준다. 하늘은 눅눅한 구름으로 가득하다. 빛나지는 않지만, 빛은 있다.


온 세상이 가득 차 있다. 빗방울과 빗소리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다음 계절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다.



햇빛이 반짝인다. 공기가 다르다. 두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환하게 반짝인다. 빛이 닿아 만든 그림자 옆에서 빛이 더 반짝인다. 빛을 받은 꽃은 생동감이 넘친다. 표정이 만들어진다. 빛이 닿은 것만으로 손톱 같은 잎들이 웃는다.



햇살 위로 물이 뿌려진다. 꽃가게의 주인이 밖에 내놓은 화분마다 푹 젖을 정도로 물을 뿌린다. 물을 마신 화분들이 햇빛 샤워를 한다. 늘 같은 일상이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다.



보도블록에는 조그마한 모래 산이 쌓여있다. 모래 산마다 구멍이 송송 뚫렸다. 개미가 부지런히 집을 만들고 있다. 먹이를 찾으러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시멘트로 만든 이 세상 너머에는 어둠 속에서 길을 만드는 아주 작은 생명이 있다. 생명이 계속 탄생하고 한 칸의 집이 지어지고, 보도블록 위에는 작은 모래 산이 또 하나 생긴다.


괜찮을 거야.


삶은 계속 이어질 거야.


그림자 때문에, 너의 빛이 더욱 반짝이고 있어.



그런 말은 없다.

아무 말도 없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에 위로가 있다.


걷다 보면 모든 순간이 위로가 된다. 어쩌면 나의 뒷모습이 나의 웃음이 나의 힘찬 발걸음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닐까?


길을 가다가 몰래 또 사진을 찍고 말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트를 들렀다가 집에 가는 모습이었다. 작은 수레에는 튀김가루와 마늘과 고추가 들어있었다.


무거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득 채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두 분은 나란히 손잡이를 잡은 채, 함께 끌고 있었다. 예쁜 모자를 쓰고, 단정한 옷을 입고 나란히 짐을 끌고 가는 모습에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말 같은 것은 없었다. 표정도 볼 수 없었고, 이유도 설명도 필요없었다. 그 뒷모습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이 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지, 옆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전달되었다.


말은 필요하다. 감사한 것은 꼭 감사하다고 말하고,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들어줄 줄도 알아야 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말이 아닌 것들로, 삶의 태도와 행동만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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