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by 김사과


아무 맛도 없어요

입 안에서 녹이면

아주 쓰고 고약한 맛이긴 해요


한 알이면

달뜨게 한 열이 내려가고

차갑게 식어가며

잠도 올 거예요

좋은 꿈을 꿀지도 몰라요


누군가는

잔잔한 바닷가를 꿈꾸고

누군가는

빽빽한 숲을 꿈꿀 수도 있어요

아주 잠깐 때때로

잊고 싶은 것들이 끼어들 거예요


맞은편에서 바라보던 눈

멈춰서 기다리던 눈

멀리 지나간 것들을 바라보는 눈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끝난 것인지 의심하는 눈

끝을 받아들이는 그 눈이

아주 가끔 때때로

잔잔한 바닷가에서

빽빽한 숲 사이에서

끼어들 거예요


열이 내려가지 않으면

한 알을 더 먹어요

통증은 현저히 줄어들어요

목까지 겨우 넘어가던 숨이

가슴으로 배로

혈관의 가장 가느다란 곳까지

닿을 거예요


무덤덤해져요

가장 소중했던 기억은

가장 끔찍한 통증이니까

사라져요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은

가장 고통스러울 테니

사라져요

네, 사라져요.

사라지면 더는 아프지 않아요


그래도 열과 통증이

그대로라면

한 알을 더 먹으면 돼요

녹여 먹지는 마세요

꿀꺽 삼키면

내일이 올 거예요


차갑게 식은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아마도

당신이겠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축축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