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비둘기 한 마리가 큰 창을 스쳐 지나갔다.
차들이 사거리에 멈춰 서고 햇빛을 향해 사람들이 걷는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림자는 태양의 반대쪽으로 키를 키우고, 신호등은 빨간 불 아니면 파란 불.
나무는 초록으로 뒤덮여 무겁게 늘어졌다.
좌회전하는 차는 좌측으로 깜빡이를 켠다.
오늘의 미세먼지는 좋음. 그런 것들.
머리카락은 여름이 다가오는 속도로 자란다.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숨 쉬지 않는 생명과 충돌한다. 먼지는 보이지 않는 흔적이 된다.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 멈춘 자리에서 누군가는 걷는다.
볼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보아야 하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데, 어느새 정해진 것 같다.
그리하여 지평선은 내 마음속에 그려지고, 먼지 속 도심에 초록빛 정글이 솟아오른다. 진득한 게으름으로 익어가는 태양에서 달콤한 냄새가 쏟아진다.
초록 속을 들여다보면 낮잠에 빠진 붉은 앵무새가 날개를 턴다. 앵무새는 거울 속 앵무새의 말을 따라 한다. 시간은 불안을 향처럼 피워놓았다. 향기는 손톱을 물들이고, 나는 카멜레온이 된다.
불안의 향기는 바닥에 눌어붙은 껌보다 더 오래간다.
풍선처럼 부풀어간다.
커지지 않게 누르면 어딘가로 빠져 부푼다. 터질 듯 부풀다가 작은 틈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 작은 틈 사이로 불안이 또 숨어든다.
조금씩 색깔이 바뀌는 카멜레온이다.
커다란 꽃을 피우려는 나는 꽃 속에 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꽃 아닌 이끼뿐일 때 숨을 수 없는 초라함에 한껏 작아지려 한다.
늪으로는 가지 말자.
발을 적시지 않고는 걸을 수 없지만 가라앉지는 말자.
그곳에 동굴이 있고, 파랗게 녹은 물이 고여있다면 그냥 마음을 던져 볼 테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높이의 지하라도 던져볼 테다.
지금보다 더 깊은 바닥으로 가서 하늘을 본다면
더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하늘은 지금보다 더 높을 테니까.
보려면 던져야 하고, 만나려면 떨어져야 한다.
깨져야 선명해지고, 확인해야 멈출 수 있다.
초록 속에 숨으려다가 파묻혀 버리지 않기 위해, 붉은 열매를 맺는다. 태양에 가까운 색으로 익어간다. 이유가 필요 없는 색으로 익어간다.
진득하게, 천천히,
어제처럼 혹은 내일처럼 지나간다. 오늘은.
앰뷸런스가 지나가고
버스가 멈추는 거리에 먼지는 멈추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오직 카멜레온뿐이다.
일상은 소리를 낸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진동 벨이 울린다. 유리문 위에 달린 풍경이 인사를 대신한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늘은 언제나 오늘이고,
내일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