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귀엽다.
사건의 발단은
쁘나의 사소한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빠, 나 강아지 키우고 싶어."
그 날로 남편은
강아지 분양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쁘나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
아주아주아주아주
허용적인 아빠인데
그 수준(?)이
아주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다.
나는 지금껏
친정에서도
주변에서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생각을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동물은 내게 너무 먼 존재였달까?
그러던 중
남편과 쁘나가
쑥덕쑥덕
둘 간의 무슨 합의를 보았는지
내게 포메라니안종이 어떠냐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전혀 관심도 없고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지도 않고
"귀엽네.
근데 강아지 키우는 건
난 반대."
쁘나가
"왜?!!!! 귀엽다며!!!!"
"귀여운 거랑 키우는 건
다른 문제잖아."
상황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쁘나야, 강아지 키우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야.
너 그 강아지대통령 그 아저씨 나오는
프로그램 본 적 있지?
문제 있는 강아지 많았잖아.
그거 다 키우는 사람이 잘 못 해서 그래.
강아지 훈련시키는 건
진짜진짜진짜 어려운거야.
엄마는 강아지는 못 키울 것 같아."
쁘나는 아주 실망하였다.
그렇지만
쁘나에게 그냥 무턱대고
안 된다고만 하면 체념이 안 될 것 같아서
방법을 생각하다가
주변에 강아지 키우는 지인에게
강아지를 이틀 정도만
빌려와서(?)
실제로 강아지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인의 강아지가
아주 순하다 못해
낯선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강아지를 2박 3일
우리집에서 돌보기로 하고
데려왔다.
그 강아지는 비숑이었다.
너무나도 순하고 발랄한 강아지가
우리 집을 뽈뽈 돌아다니는데
그 느낌이 이상했다.
쁘나는 강아지를 아주 예뻐했다.
하지만 똥을 치우거나
빗질을 해주거나 하는 등의
실질적인 일들은
전혀 하지 못해서
쁘나에게 말했다.
"거봐, 강아지 데려오면
똥도 치워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빗질도 해주고
해줘야 하는 일이 많은데
너 못 하잖아.
엄마는 안 해줄거야."
그때 쁘나는 1학년이었고
아직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에
얼마나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나이였다.
그저 철 없는 아이의 말에
남편과 나는
휙휙
휘둘렸다.
비숑 강아지를 돌려보내고
한 달이 지났다.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길래
이대로 강아지 사건은 무마된 줄 알았다.
어느 날 저녁에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차 마시고 들어갈 거니까 조금 늦어,
쁘나 잘 챙겨줘~
미리 이야기해놓은 그 주.
사건이 일어났다.
당일 친구를 만나
저녁밥을 먹고
커피숍에 가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원래
7시쯤 넘어가면
쁘나에게서
왜 집에 안 오냐며
재촉 전화가 오는데
8시가 넘어가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엄마의 촉이랄까.
뭔가가 이상했다.
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쁘나야, 저녁 먹었어??
엄마 곧 출발할거야~"
그런데 뭔가 집이 아닌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쁘나야, 집 아니야??"
그러자 쁘나가
"엄마, 우리 지금 차 안이야."
"차 안이라고???
밖에서 밥 먹고 왔어???"
"아니~
우리 지금 멀리 가고 있어~"
"엥??????
여보~ 지금 어디 가고 있는데???"
쁘나는 통화할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스피커폰으로 하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을 남편에게 물어봤다.
남편 왈
"어~~ 우리 지금 서울 가고 있어~~~"
"서울?????????????"
우리는 서울에서 먼 지방에 살고 있다.
"웬 서울???????????
이게 무슨 상황이여????????"
그런데 그때 들리는
엄청난 이야기
"강아지 데리러~~~"
"강아지?????????????????????"
"응, 이따 새벽에 도착할 것 같아~~~"
아주 해맑은 목소리로
남편과 쁘나는
강아지를 데리러 가고 있다고,
강아지를 키울거라고
나에게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었다.
"아니!!! 강아지 키우기로
아직 합의된 거 아니었잖아!!!!"
"쁘나가 키우고 싶다잖아~~~"
이 인간이 정말.
"진짜로 데려온다고?????????"
"응~~~~~~"
일이 이 상황까지 온 거면
남편 성격상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온 것이었다.
"알겠어.
일단 데려와봐.
아이고 머리야~~~~~~~~~~"
집에 와서
새벽까지
쁘나와 남편,
정체모를 강아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 2시가 넘어
차가 들어왔다.
켄넬 안에는
아주 하얀 솜뭉치 같은
작은 강아지가 웅크리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 그렇게 준비했는지
울타리, 먹이, 패드 등등
강아지 관련 용품을 쏟아냈다.
아이고, 나 몰래 다 준비해놨다는 거지.
아이고 머리야.
강아지는 아주 순한 아이였다.
(지금도 순하다 다행히)
그렇게 강아지와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강아지는 아주 귀엽고
그만큼
아주 귀찮은 존재였다.
똥도 치워줘야 하고
밥도 줘야 하고
물도 갈아줘야 하고
패드도 갈아줘야 하고
그리고 대망의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처음 며칠은
남편과 쁘나, 나
셋이서 산책을 시켰는데
점점
그 둘은 산책나가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희대의 망언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집에서 편히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인거야.
길에서 사는 강아지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야.
산책 정도는 안 해줘도 되."
라며
강아지 산책을 안 시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산책을 안 시키는 게 아니라
본인이 나가기 싫은 것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변명하길래
싸워도 보고
강형욱 선생님이 말한
산책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지만
남편은 귀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이것 봐.
다 내 몫이 됬잖아.
아아아아아ㅏ아아ㅏㅏㅏㅏ
그래서 결론적으로
산책은 내가 시킨다.
처음 1, 2년은 산책이 너무 힘들어서
나마저도 피곤하고 지친 날은
산책을 안 시키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것도 3, 4년이 되자
강아지 산책시키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차피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므로
아침에 산책시키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만 독박쓴다는(?)
그 감정이 불쾌하고 화나서
같이 돌아가며
산책 시키자고 한 것이었는데
아침잠이 많은 남편은
아침 산책도 무리
저녁은 온전히 게임하는 시간이라
저녁 산책도 무리였던 것이다.
실제로 아침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쾌하고 좋았다.
남편에 대한 불만에 휩싸여
강아지와 나와의
좋은 시간을
내가 짜증나는 시간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 되고
화밖에 나지 않는 상황마저도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직시하게 되었다.
나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로
생각을 바꿨다.
그러자
산책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산책을 시켜주는 것도 나,
간식을 챙겨주는 것도 나,
놀아주는 것도 나.
당연히 강아지는
우리 셋 중에
나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그대로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이
내게 애정을 보이는
강아지를 보면서
차가웠던 내 마음이
따뜻해져감을 느꼈다.
내게도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강아지는
나 스스로
나는 강아지에게 사랑받는 존재야~
나 꽤 괜찮잖아~~
하며
내 자존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에 더해
강아지가 주는 기쁨이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가 깬 것을
어떻게 알고 와서
애교를 부리고 (사실은 간식 달라는 거지만)
남편과 내가 딱히 대화할 일이 없을 때도
강아지에 관련된
시덥잖은 이야기들로
우리 일상이 채워졌다.
어디 여행을 가느라
잠깐 시댁이나 친정에 맡겨놓고 온 후
집에 들어가면
문 가에 반겨주는 강아지가 없을 때의
그 허전함,
겨울철 난로같은
그 따뜻한,
작고 소중한 그 솜뭉치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과 기쁨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처음엔 강아지 때문에
서로 싸우고
집안의 평화가
깨지는 듯 하더니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우리 강아지.
우리 애기
오래오래 건강하게
엄마랑 같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