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의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가 오래오래오------래 살길 바라면서
며칠 전 쁘나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들고
어머님께서 우리집을 방문하셨다.
친구분과의 점심 약속 전에
잠깐 들르신 거였다.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어떠시냐고,
괜찮으시냐고 여쭤보니
어머님은 담담하게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고,
어떻게 떠났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해주셨다.
고양이는 딱 3일을 앓다 죽었다고 했다.
그것도 통증에 몸부림치면서
고통 속에 죽은 것이 아니라
조용히
서서히 죽었다고
어머님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저렇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딱 3일만 아프고 죽으면 좋겠다고
어머님의 부모님과 형제는 젊은 날에
여러 이유로 요절한 경우가 많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은
여동생 한 분뿐
그 여동생분도 많이 아프셔서
어머님은 여동생 간호를 수십년째 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여동생이 살아있어
좋다고 하셨다.
여동생이 떠나면 오로지 당신 한 분만 남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어머님은 항상 죽음에 대해
준비해왔다고 말씀하셨다.
부모와 형제가 그랬듯
본인도 갑작스럽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고 죽음이 오길 비관적으로 기다리시는 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열심히 헬스장에 다니며 (어머님은 올해 칠순이시다.)
근력 운동을 하시고
항상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생활로
본인의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신다.
어머님은 외유내강의 표본같은 분으로
나는 항상 그런 어머님을 좋아하고
존경해왔다.
결혼생활 13년 동안
어머님은 맏며느리인 나에게
그 어떤 책임감도 요구하지 않았다.
본인이 겪은 시집살이가 너무나도 고되고 괴로워
본인은 자신의 며느리에게
그 어떤 시집살이도 시키지 않겠노라고
젊을 적부터 다짐했다고 했다.
심지어 남편과의 이혼을 거론할 때조차
어머님은 나를 다그치지도,
화를 내시지도 않으셨다.
나는 그때 남편과는 헤어지고 싶었지만
어머님과는 헤어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머님은 내게 정말로 좋은 분이셨고
지금도 그렇다.
막내 도련님이 부당한 일로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어머님은 1인 시위라는 굉장히 외로운 길을 선택하신 적도 있다.
그 시위는 1년 가까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그때의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끔씩 눈물이 날 정도로
어머님의 고요한 헌신과 자식에 대한 다정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지 생각한다.
그런 어머님이 담담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들었지만
(이상하게 감정 표현을 잘 못하겠다.)
속으로는
'어머님 빨리 돌아가시면 안돼요
오래 사셔야 해요 엉엉'
하면서 들었다.
우리 엄마와는 어려운 일이
어머님과는 아주 편하게 진행되는 일이 많았다.
친정식구들과의 여행은 긴장과 걱정 속에 (서로 싸울까봐) 이뤄진다면
시댁식구들과의 여행은 여유와 편안함 속에서 진행될 정도로
어머님은 그 분위기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셨다.
시댁식구들과의 추억은 항상 다정하고 따뜻했다.
지금도 결혼기념일, 생일, 명절 때마다
예쁜 봉투에 글을 적어서
남편과 나, 쁘나 각자에게
용돈을 넣어서 주신다.
축하한다고,
사랑한다고.
내가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 때문에
힘들어할 때
어머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셨고
나를 위로해주셨다.
어머님께 받은 사랑을
내가 어머님께 다 돌려드릴 수 있을까?
최근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전혀 울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와 나는 별로 공유한 추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이 언젠가 떠난다면
나는 정말로 많이 울 것 같다.
그녀와의 추억이 너무나도 많고
그 기억은 정말로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좋고 행복하니까.
어머님이 오래오래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