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

키즈카페를 다녀와서 든 생각들

by 사춘기 엄마

별생각 없이 아이를 낳았는데(?)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로 많이 치유받았다.


초등학교 4-5학년 시절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신시가지에 큰 정글짐(지금으로치면 키즈카페)이 오픈을 했었다.


바쁜 아빠를 졸라

그곳에 가게 되었지만

일에 지친 아빠는 나보고 알아서 잘 놀라고 하시고

부모님들이 앉아계시는 테이블에 앉아계셨다.


나는 혼자 정글짐에서 노는데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사실은 외로웠다.


낯가림이 있는 나는

처음 보는 아이들과 놀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피곤한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하기에는

염치도 없고 (데려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으니까)

정글짐은 큰 성인 남성이 들어와 같이 놀 수 있는 사이즈도 아니었다.


정글짐에서 한 시간이나 놀았을까,

아빠께 그냥 집에 가자고 할 때의

그때의 감정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쁘나가 키즈카페에 가자고 하면

나는 귀찮고 피곤하면서도

어릴 적 그 기억 때문에 가서

신나게 쁘나랑 논다.


정글짐도 기어이 들어가서

쁘나랑 같이 기어다니고

(부모님이 들어가서 같이 놀아도 되는 키즈카페로 간다.)

함께 뛰어다니고

방방이도 눈치껏 탄다.


그런 나를 보는 다른 엄마, 아빠들은

저 아줌마 되게 뛰어다니네,

보호자가 저렇게 애들 노는 곳에서 저래도 되는거야? 했을 것 같지만

다른 아이들 있는 곳에서는 안 놀고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눈치껏 논다.

(그래서 좀 한산한 키즈카페를 좋아한다.)


사실 쁘나는 가만히 앉아서 노는 것보다

뛰어 노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아이다.

그런데 집에서 뛰어 놀면 아랫집에 너무 민폐이므로

숨바꼭질이나 풍선놀이를 몇 번 하고 나면

심심해서 핸드폰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키즈카페에 가면

원없이 에너지를 다 풀어버릴 수 있도록

몸으로 놀아준다.


그리고 간혹 아주 외향적인 아이들은

나와 쁘나가 낄낄대면서 놀고 있으면

다가와서 같이 놀자는 신호를 보내는데

그럴 때마다 나와 쁘나는 경직되어

조금 놀다가 도망쳐버린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와서 같이 놀아요~~ 하면

쁘나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아이가 당돌하게(?) 말하는 것에

당황해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자신은 그렇게 못하니까.


나도 그런 아이들이 신기해서 같이 조금 놀긴 하는데

그런 아이들의 특성이 에너지가 아주 넘쳐서

우리는 에너지가 쪽 빨려

어느 순간에는 슬그머니 도망치고 마는 것이다.


쁘나가 어렸을 때는

키즈카페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노는 것도 바랬지만

내 피가 어디로 갔겠는가.


쁘나 역시 낯가림이 심하고

그런 쁘나에게

저 친구랑 같이 놀아봐~~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불편하고 어색한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쁘나의 사회성이 미숙하다면

그건 내 책임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와 몸으로 놀다보면

몸으로 놀 때는 이렇게 노는 거구나를

쁘나가 배워서

시간이 지나면 낯선 친구들과도

엄마와 노는 것처럼

신나게 놀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으니 그저 지켜볼 뿐.


어제도 쁘나가 키즈카페에 가자고 해서

큰 도시에 있는 키즈카페에 다녀왔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놀지 못했던 한(?)을

쁘나와 놀면서 해소했으니

육아는 내게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로 심리치료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다.


심리상담 수업 중에

한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문장이 생각났다.


EBS 김광호 PD가 한 말로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 라는 문장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를 키우는 일과 같다라니,

정말로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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