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 정도는 준비하고 면접에 와주세요
상반기 공채를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하반기 공채 시즌이다.
일이 바쁘지만 힘은 없는 관리자로서, 면접관 지정은 피할 수가 없다. 잔뜩 귀찮은 표정으로 면접 장소로 가보니 나랑 비슷한 표정의 불쌍한 관리자들이 보인다. 며칠 전에 면접실에서 봤던 사람들도 많다. 다행히 이번에는 친한 호철 님이 같은 면접조라 반가웠다. 끌려온 상황이 서로 멋쩍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눈다.
"호철 님도 끌려오셨군요."
"네, 바쁘다고 했는데, 면접관이 없다고 꼭 와달라고 해서.."
"그러게요. 면접하고 나면 반나절이 사라지니까. 거기다가 면접을 보면서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더 힘드네요."
"면접비는 안 줘도 되니 일이라도 빼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끝나면 6시인데, 그때부터 밀린 일 하려니 암담합니다. 오늘은 최대한 빨리 끝내 봅시다!"
그렇게 '스겜(Speed Game)' 의지를 다지며 면접을 시작했다.
"OO공정 지원자 ㅁㅁㅁ입니다. 저는 xxx를 전공했고, ooo 한 강점이 있습니다. ~~(중략)~~ 이 회사의 일원이 되어서 꼭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원자가 열심히 준비했다는 건 알겠지만, 솔직히 자기소개는 대부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그래서 면접관은 고개만 끄덕이며 빠르게 이력서를 훑어본다. ‘질문할 만한 포인트가 있는가?’를 찾기 위해서다.
이력서마저도 뻔한 좋은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예를 들어 봉사활동을 했다. 동아리 활동을 했다. 과 대표를 했다. 이런 얘기만 적혀있다면....
정말 물어볼 게 없다. 그럼 결국 사전에 주어진 전공 문제에 대한 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면접은 인성면접과 직무면접이 있는데, 인성면접에서야 그런 게 쓸모가 있겠지만 봉사 활동이니 동아리 활동이니 과 활동이 직무와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제발 인성과 직무 면접의 밸런스를 맞춰서 자소서를 쓰길 바라본다. 예를 들면, 재미있었던 과목이라던지, 전공 관련 활동 그런 것?
전공 문제는 면접관인 내가 봐도 정말 어렵다. 출제자가 매번 달라진다고 하던데, 다들 대학 때 전공서적만 파던 사람들인지 전공을 모르면 답하기가 매우 곤란한 내용들이다. 그런 문제를 잘 풀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내 전공과 다른 분야라면? 그럴 땐 진짜 노답이다. 보통 3가지 문제 중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하는데, 다 모를 수도 있고, 어떻게 만만한 걸 하나 찍어서 답을 한다고 해도, 문제는 면접관들은 이 분야에서 15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다. 괜히 아는 척 모호하게 답을 했다간 끝없는 연계 질문에 멘털이 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꼭 자소서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직무' 관련된 경험을 적어야 한다. 그게 면접관과 후보자 둘 다에게 좋다. 봉사활동 하고 동아리 대표 한 것도 잘하긴 했는데, 그거 잘한다고 더 빨리 일을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시 전공 문제로 돌아가서, “인사팀은 왜 이렇게 어려운 전공 문제를 낼까?”
단순히 맞고 틀리고를 보려면 필기시험으로 하면 된다. 직무 면접의 문제 출제 의도는 ‘정답률’이 아니다. 위기 대응 능력, 응용 능력, 사고의 깊이를 보는 것이다. 면접관들은 이미 정답과 해설, 의도, 후속 질문 리스트까지 다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원자가 정답을 말하는지만 보지 않는다. 어떤 관점으로 접근했는지, 어떤 근거로 답을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본다.
예전에 어떤 지원자가 있었다.
연속 검체 1~8 결과가 균일하지 않은 문제 상황에서 현상의 이유는 “특정 인자 통제 실패”였다. 그런데 그 지원자는 홀수·짝수 검체의 묘한 경향성을 보고 나름의 이론을 설명했다. 정답은 아니었지만, 관찰력과 사고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근거 있는 생각이면 된다. 단, 절대 모호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oo 물질은 반응성이 떨어져서 결과가 낮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런 답변은 신뢰가 확 떨어진다.
‘무슨 반응성이?’, ‘근거는?’, ‘대조군 대비 얼마만큼?’
면접관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세 개 이상 뜨면 좋지 않다. 근거 없는 추측은 하지 말자.
간혹 근거도 없이 특정 사항을 확정해 버리면, '얘는 전공 지식의 깊이가 얕네. 질문 조금 더 해보면 털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면접관에게 모호함이라는 씨앗을 심지 말자.
면접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문제 풀이 하고, 자기소개하고 나면 전체 면접 시간 중 1/3이 지나간다. 남은 20분 안에 당락을 확정 지어야 한다. 그러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답이 10초 안에 나오기 어렵다면, 그건 모르는 것이다. 괜히 면접장에 서로 민망한 묵음과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말자. 이 부분은 잘 모른다라고 하고, 대신 이 부분은 잘 안다고 질문을 꺾자. 대신 질문을 꺾을 때에는 어느 정도 질문과 연관성이 있는 부분이어야 하고,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선 자신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A 공정의 수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는데, 잘 모르겠다면.
"A 공정은 제가 책에서만 배웠어서 잘 모르는데, B 공정은 제가 실험실에서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B에 대해서 설명해도 될까요?"라고 틀어 볼 수도 있다.
이게 무례해 보일까? 나라면 아니다. 난 이미 A 공정의 수율을 결정하는 게 뭔지 안다. 내가 물어본 이유는 그냥 A 공정이 생각나서였다. 어느 공정이든, 완전히 우리 회사와 관계없는 공정이 아니면 답만 잘하면 내가 지원자를 판단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면접관의 목적은 ‘지원자의 사고와 역량’을 보는 것이다.
대졸 생산직을 뽑는데 이력서에 연구직에 대한 내용만 많다면, 난 그 지원자에게 질문할 내용이 없다. 물론 연구 성과를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열심히 했었는지를 보는 것이지, 채용하려는 직종에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 경력이나 이수 과목을 지우라는 것은 아니다. 자소서 내에 채용하려는 직종에 맞는 경험이나 배웠던 내용을 적어두라는 것이다. 내가 잘한 것을 적는 게 아니라, 채용에 맞는 것을 적는 게 자소서다. 한 가지 자소서 만들어서 그대로 복붙 하면, 아무리 잘 쓴 보고서라도 상황에 따라 광탈을 부를 수 있다. 바이블은 없다. 매번 지원하기 전에 자소서를 손 보도록 하자. 그게 최소한의 예의이다.
만약 내 전공과 지원 직종의 차이가 크다면, 스토리를 짜는데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스토리라고 해서 뭔가 신파를 찍으라는 건 절대 아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ooo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아 xxx 직종에 관심이 많아져서 전공과는 다르지만 이걸 신청했다.'라고 한다면..
안타깝게도 직무면접 면접관들은 평소에 감정적인 사람이라도 면접 때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돌변한다. 신파는 먹히지 않는다. 합리적인 이유를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면, ooo 직종이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어 3학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주전공과는 다르지만 xxx 수업도 들었고 ooo 책도 읽었다. 주전공에서 배웠던 어떤 내용과 시너지가 있어서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풀어본다면 면접관도 충분히 납득할만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채를 지원하고 대기업 쏠림 현상으로 지원자의 스펙을 보면 정말 대단한 스펙의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동종 전공을 들었고 관련 연구를 했고 실험을 했고 그런 건 특별히 재미있지 않다. 이미 날고 긴다는 비슷한 친구들이 많으니까.
나만의 특장점을 찾아보자. 난 ooo 언어를 통해 xxxx 프로그램을 만들어 봤다던지, AI를 공부해서 실험에 AI를 적용한 경험이 있다던지, 영어 말고도 프랑스어, 이탈리어를 할 수 있다던지 그런 걸 강조해 보자.
사실 이건 대학에 입학하여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조언이다. 전공을 A+ 맞는 것보다, 전략적인 특장점 만들기가 더 중요한 스펙이다. 그런 것 하나가 분위기와 면접관의 눈빛을 바꿀 수 있다.
면접을 하다 보면 “이 친구는 학자 기질인데?” 싶은 지원자가 있다.
그래서 “왜 대학원은 생각 안 했나요?”라고 물어보면
“더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요”, “요즘은 공부해도 성공하기 어렵잖아요” 같은 답을 듣는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우수 인재가 오면 좋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기업 쏠림 현상이 안타깝기도 하다.
면접관으로서 최소한의 준비를 조언하고 있지만,
인생 선배로서는 이런 말도 해보고 싶다.
"취업 준비도 중요하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얘기를 호철 님에게 했더니,
“그게 꼰대입니다. 그런 말하면 요즘 애들 다 싫어해요.”
그러게, 생각해 보니 만약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자기는 붙었으니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했을 것 같긴 하다.
황급히 꼰대력을 억누르고, 다음 지원자의 이력서를 살펴본다.
부디 이번엔 면접관, 지원자 모두 만족스러운 면접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