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조직 개편 ep.5) 하고 싶은 일 도전 해보기

by 구르미


꿀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하길 바랐지만, 과음 후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잠들었을 때 이 몸뚱이로 40년 넘게 살아온 경험으로 보면 숙면을 바라긴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얕은 잠에 빠져 수많은 알 수 없는 꿈을 꾸며 뒤척이다가 속이 불편해서 눈이 떠졌다. 내심 시계가 7시 이길 바랐는데, 안타깝게도 5시 반이다.


속이 불편해 무시하고 다시 잠들긴 글렀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거울에 비친 날 바라봤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탓에 한잔만 마셔도 붉어지는 얼굴은 아직도 분해가 진행 중임을 알리듯 홍조를 띠고 있었고 속은 금방이라도 위 속에 있는 걸 내보내려는 듯 꿀렁거렸다. 다행히 안주를 거의 안 먹고 생수와 함께 술을 마신 덕분인지 조금 지나니 구토감은 사라졌고, 따뜻한 꿀물을 하나 타서 조용한 거실의 소파에 혼자 앉아본다.


아직 새벽이라 TV를 켜긴 그렇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여름이면 지금쯤 해가 뜨려고 밝아지기 시작할 텐데, 겨울이라 그런지 아직도 깜깜하다.


"사장님, 아침형 인간이시면 이 집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주변에 여기보다 높은 아파트가 없고 동쪽으로 뻥 뚫려 있어서 해 뜨는 게 잘 보여요. 여기 하세요."


5년 전, 부동산 중개인은 자기는 여기에서 해 뜨는 걸 본 적이 없을 텐데도 마치 본 것처럼 극찬을 했고, 그렇게 난 대출을 끼고 이 집을 샀다. 2년마다 옮기던 전세 난민을 벗어나던 시점이었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잘 되던 시기였다. 회사에서도 위에 임원에게 인정받던 시기였고, 아이도 유치원 다닐 시기였기에 사람 구실을 하며 한 없이 귀여움을 뽐내며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해 줬다.


그런데 캄캄한 창 밖은 내 현재 같았다. 언젠가 해는 뜨겠지만,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출도 자산이라며 자신 있게 받았던 35년 만기 풀 대출은 오늘따라 나에게 집 크기만큼 큰 짐이 되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 오늘 면담을 잘하면 다시 해가 뜰 거야.'


플랭크와 푸시업을 필라테스 자세를 몇 개 했더니 어느덧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나마 땀이 나니 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가장 말끔한 셔츠를 골라 입고 아이랑 와이프 모두 깨기 전에 조금 이르게 집을 나섰다.


메신저를 보니 시나 어제 연락 주셨던 임원분은 출근해 계셨다. 임원들은 암묵적인 룰이 있다. 사장님 보다 일찍 출근해야 한다. 물론 아침잠이 없으신 사장님이 가끔 4시나 5시에 출근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임원들은 6시 전에는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난 가능성이 없지만, 만약 된다면 너무 싫을 것 같다. 자의로 6시 출근은 하겠지만 강제로 6시 출근은 너무 싫으니까.


지금 시간이 6시 반이니 임원 분들에게는 일반 사원들의 8시와 비슷한 시간일 것이다. 메신저를 보내기는 또 예의가 없는 것 같고, 어차피 그쪽 부서 사무실에도 이 시간에 누가 온 사람은 없을 듯하여 수첩을 하나 들고 쭈뼛쭈뼛 그분 사무실로 가봤다. 일정은 안 잡았지만 바쁘지 않으시다면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 일 수도 있다. 내가 근면한 사람이라는 것? 혹은 간절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겠단 기대도 있었다.


집무실 앞을 슬쩍 지나가봤는데, 이 새벽부터 전화소리가 들린다. 하필 지금 전화라니...

그렇게 소득 없이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서분에게 연락해서 임원분께서 어제 잠깐 보자고 하셨는데 일정 한 번만 잡아달라고 했더니 8시 반으로 일정을 잡아주셨다.


뭐, 괜히 일찍 온 게 되긴 했지만, 어차피 집에 있었어도 오만가지 걱정에 더 혼란스러웠을 테니 이게 더 낫다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와 테익아웃으로 들고 온 조식을 먹었다.


8시 25분, 다시 아까 그 자리로 갔더니 다행히 이번에는 통화나 회의가 아니었다. 내가 오는 걸 보셨는지, 눈인사를 하고 저기 옆에 회의실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날 이끄셨다.


"반갑습니다. 매주 일 때문에 회의에서 보다가 이렇게 보니까 또 신기하네요. 잘하셨던 것 같은데 조직 개편된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윗분들이 결정하는 거라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요, 아마 새로운 구상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 왜 우리 부서로 옮기고 싶은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때도 언뜻 들었었는데, 대부분 경력이 기술 쪽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 듣고 좀 놀랐어요. 우리 부서에 어느 어느 팀이 있는지는 알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IT로 옮기고 싶은 이유는 제 전공 부분을 계속해서 깊게 하는 것도 좋긴 한데, 투자를 담당하다 보니 다양한 부분에 전문성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원래도 IT에 관심이 많았기도 했고, 전에 IT 프로젝트 T/F도 같이 한적 있어서 부서에 친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느 팀을 원하세요?"

"몇 개 팀을 고민해 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팀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난 개인이 원하는 팀에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순위를 정한다면 어디인가요?"

"아 네, AI를 해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흐름이기도 하고 이 것을 공정에 적용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네, 좋습니다. 어쨌든 전 찬성입니다. AI 팀장에게 말해둘 테니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그랬다. 새로 옮기려고 하는 부서는 IT다. 내 전공도 아니고, 내가 해왔던 일도 아니고, 내가 전문성을 가진 분야도 아니다. 왜 IT를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명확한 답은 없다. 그냥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회사 내 전배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일.


난 러닝커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하던 공정을 다시 한다면 분명 더 배울 수 있는 게 있겠지만, 들인 기간 대비 효율이 높진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의욕이 낮을 수도 있다.


하지만 IT는 다르다. 최근 자동화 추세에 맞춰 IT의 역할은 커져가고 있는데, core 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힘들다. 또한 공정을 잘 아는 전문가는 더 드물다. 그래서 팀장님과 면담 때도 관리보다는 실무 업무 자체를 더 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그게 이번 결정의 가장 큰 key였다.


AI 팀장님도 평소에 안면이 있던 분이라 일사천리로 점심 전에 약속을 잡고 부서 이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팀장님도 마침 사람이 필요했고, 경험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이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해줬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관리가 아닌 신입처럼 처음 6개월 동안은 현장에서 함께 일을 배우고 그 후에 어떤 일을 하는 게 부서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가능하면 빨리 오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채근과 함께. 그렇게 옮길 곳은 다 정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금 팀이다. 상무님께서도 구두로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자기는 잡지 않는다고 했으니, 당연히 바로 승인이 떨어지고 조만간 새로운 부서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면보직 후 옮긴 현재 부서 팀장님도 그래도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게 부럽다며, 상무님께 잘 말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잘 풀릴 줄 알았다.


그날 저녁, 팀장님이 날 부르기 전 까지는.

"구르미님,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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