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불편한 사람이 되었지?
취업 이후 15년 넘게 생산과 기술 관련 업무만 해왔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설비와 공정을 다루고, 품질을 안정시키는 일들이 내 커리어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전략팀으로 전배 되었고, 운 좋게도 신임을 받아 투자를 담당하는 관리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분야는 내 배경이 탄탄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늘 마음 한켠에 걸려 있었고, 결국 현실이 되었다. 새로운 임원의 부임과 함께 예전의 신임은 서서히 흔들렸고, 조직개편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다시 관리자가 아닌 자리로 내려와 옆 부서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그 임원에게서 빨리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맞교환이 아니면 어렵다는 지시에 전배는 실패했고, 그래서 더 씁쓸했다.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고, 남아 있어야 했지만 환영받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변 지인들과 가족의 응원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옮긴 부서에서도 어찌어찌 ‘적당히 의미 있는 사람’ 정도의 자리를 만들며 지냈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애썼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러던 중 옮긴 부서의 관리자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임원에게 물어보니, 이제는 옮겨도 될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 언제까지 여기서 보고서만 쓰고 있을 수는 없지. 다시 기술 쪽 커리어로 돌아가서 전문가가 되어야, 나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기존 부서 관리자에게 연락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그래도 친분이 있는 분이었다.
“저 다시 돌아가도 되나요?”
“요즘 인력 줄이라는 압박이 많아서요. 저희 부서는 어렵고, 바로 옆 부서는 어떠세요?”
“거기도 하는 일이 비슷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한번 물어볼게요.”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르미님, 안타깝게도 그 부서장은 주니어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제가 자리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신입이 하는 일이라도 다 할 수 있다고 했던 것도 전해주셨을까요?”
“네, 그래도 나이와 직급이 있어서 본인도 그렇고 밑에 실무자들도 불편할 것 같다고 어렵다고 하네요.”
“제가 나중에 따로 만나봐도 될까요?”
“네, 가능은 한데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전에도 사람 필요하다고 해서 추천했는데, 나이 때문에 결국 못 옮겼었거든요.”
그렇다. 그 부서장은 나보다 어린 공채 출신이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쓰는 게 부담스럽고, 굳이 불편하게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나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이렇게 되는 게 괜히 서글펐다.
어쩌면 나이는 고작 숫자가 아니라, 이적 시장에서 가장 큰 조건일지도 모른다. 40대 중반. 어느덧 나는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이런 일이 모든 회사에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보직장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정말 큰 사고를 쳤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고, 조직은 연공서열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변화는 느렸고, 외부에서는 그 회사를 공무원 조직 같다고 했다.
지금 회사는 다르다. 젊은 사람들이 빠르게 발탁되어 보직장이 되고, 나이 든 사람들은 특출 나게 빠르게 성장한 일부를 제외하면 자연스럽게 퇴물 취급을 받는다. 퇴물로 낙인찍힌 사람들 중 잘 나가는 사람은 이직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듯 없는 듯 어린 보직장의 지시를 받으며 회사를 다닌다.
내가 ‘별거인 사람’ 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직을 할 것인가. 아니면 별거 아님을 인정하고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물론 엄청난 노력을 통해 인식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외부의 도움과 타이밍이 필요한 일이라 확신할 수 없다.
그나저나 옮기고 싶은 부서의 보직장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시켜만 주시면 뭐든 하겠다는 군기 바짝 든 모습이 맞을까. 아니면 생각보다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열심히 PR 해야 할까.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밤이다. 어느 방향이든 그 부서로 가고 싶은 내 진심보다도,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이 그를, 그리고 나 자신을 덜 불편하게 만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