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가 다 싫고 한없이 불안한 사춘기에 접어든 직장인에게
차를 타면 뒷자리에서 조잘조잘 쉼 없이 말하다가 어느 순간 말이 없어서 보면 잠들어 있던 아들램이 이젠 차를 타면 말이 없다. 어떨 땐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조용히 혼자 폰을 보고 있다. 말을 걸어 보지만 답은 단답형이고, 어쩔 땐 일부러 답을 안 할 때도 있다. 물론 차에서만 그런 건 아니고 집에서도 비슷하다.
그렇다. 아마 사랑하는 아들램도 이제 사춘기가 멀지 않은 듯하다. 과연 사춘기에 어떤 진상을 부릴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이제 정말 어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한참 후 아들이 결혼 후 떠날 그때가 그려져 마음이 짠해진다.
부모들에게 사춘기는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사춘기가 무한하게 이어지진 않는다. 성장통이란 말처럼 성장을 하기 위한 한 단계다. 그래서 그 시기가 당사자에게나 부모에게나 견딜만한 이벤트 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도 사춘기가 있을까?"
아직 직장인으로 끝까지 살아본 게 아니라 잘 모른다.
예전엔 직장인 1년 차가 사춘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돈을 내고 다니는 곳에서 돈을 받고 다니는 곳으로
부모 없이 내가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곳
싫지만 피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에 참고 인내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것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그 시기를 못 견디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업보인양 견디며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정답은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뿐 아니라 그 대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무 대책 없이 도피를 위해 나왔다간 전쟁보다 더 심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날 지켜준 건 부모님이었다. 난 부모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나를 위해 계속 희생하셨던 분들에게, 당신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했다. 입사가 결정된 후 한 없이 밝게 웃으시던 모습, 손을 잡고 수고했다고 하시던 모습이 기억나서.
또 한 때는 3~5년 차가 사춘기라 생각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이제 회사에 적응하고, 처음으로 진급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성취감이 높아질 때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일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을 때 이기도 했다. 과연 이 길이 옳은 길인가 라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엄청 많아졌을 시기였다.
그리고 이 때는 안타깝게도 이런 고민이 생길 때 툭 터놓고 말할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때다. 다들 회사일에 결혼에 육아에.. 예전 친구들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다닐 때는 더 그럴 것이다.
이 때는 이 길이 맞나 하는 고민이 가장 힘들었다. 충분히 새로 시작할 수 있을 시기였고, 괜히 주변에 더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함이 많을 때였으니까.
그때 날 잡아준 건 지금의 와이프다. 회사 일 말고 더 즐거운 일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꼭 회사라는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걸. 꼭 밖으로 보이는 성공만이 행복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 줬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사춘기는 바로 지금이다. 내년이면 직장생활 20년 차. 뉴스에 나오는 40대 임원 같은 엘리트 코스는 불가능하단 걸 깨달은 시기.
한 때 잘 나간다 생각했지만 이젠 그저 그런 나이 든 회사원이 내 모습이다. 내가 꼭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가? 나중에 회사가 안 좋아지면 회사는 날 잡을 것인가? 만약에 밀려난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발버둥을 쳐도 이미 더 올라가긴 힘들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인정이란 참으로 달콤하지만, 없어지면 더 쓰게 다가오는 존재다.
학교에는 참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 대학교에서는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이긴 했지만, 그래도 참 다양한 부류가 있었고 무한 경쟁보다는 함께 배운다는 느낌이 컸다.
하지만 회사는, 특히 이름 꽤나 들어본 대기업은 그 공부 잘한다는 친구들 중에서 엄선에 엄선을 해서 사람을 뽑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해외대, 상위권 대학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다들 뭔가 잘난 게 하나둘씩 있다. 그래서 뽑혔겠지.
그래서 여기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열등감은 학교 때 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정을 못 받으면 더 커지게 된다. 난 이 정도밖에 안 됐나..?
가장 문제는 마음의 불안과 불행의 원인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지의 불안이 불행을 만들고 미지이기 때문에 그 불안 요소를 없애기 어렵다.
어느 책에서인지, 심리상담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불안을 없애는 가장 첫 단계로 내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고 그걸 문장화하는 것이라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아직 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부쩍 우울해진 표정, 부쩍 줄어든 기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날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
아무리 예비 사춘기라고 해도 아들램은 내가 집에 오면 반갑게 인사를 해주고 (과도하게 반갑게 인사할 때는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경우가 많긴 하다.) 와이프도 고생했다며, 집에 와선 회사일 잊으라며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 가는 그 시간이 너무 기대된다.
부디 이 사춘기가 끝나고 나서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신체적 사춘기는 몸이 크면서 자연스럽게 지나가는데, 난 이미 몸이 다 크다 못해 노쇠해가고 있는데, 언제 지나갈지 걱정이긴 하다. 부디 그 시점이 내 퇴사나 은퇴가 아니길 빈다.
난 행복하게 직장생활을 끝내고 싶다. 내 최저점에서 생존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이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