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나쁨을 정하는 건 팀원의 몫
얼마 전, 작년에 실시했던 다면평가 분석 자료가 메일로 도착했다. 이미 난 관리자에서 내려왔지만 과연 부서원들은 어떤 평가를 했을지 궁금해서 열어봤다.
사실 윗사람들의 평가는 이미 연말 인사에서 점수와 보상과 인사발표로 확인했기에 더 궁금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평가는 달랐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다면평가 점수 자체를 객관적인 지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의도적으로 낮은 점수를 줄 수도 있고, 만점의 기준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숫자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매번 나를 오래 붙잡는 건 다면평가의 마지막 항목, 주관식 질문이다. 익명이라는 장치 덕분에 비교적 솔직한 의견이 담기기 때문이다. 물론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1:1 면담 때 직접 해주지….’
하지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진짜 생각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주관식 답변 중 가장 어려운 건 단 한 글자? 정확히는 한 철자다.
‘.’
아무 의견 없다는 표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왜 그는 나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는 의견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그 무관심이 때로는 가장 큰 평가처럼 느껴진다.
무플을 제외하고, 이번 다면평가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답변은 이것이었다.
“항상 잘 챙겨주시고 업무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임원분과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우리 부서의 성과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가장 뼈아픈 한 줄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지금의 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면보직된 상태에서 다면평가 결과를 곱씹고 있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습기도 하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았던 관리자 생활 동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단 하나였다. 부서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관리자가 되는 것.
개개인의 업무를 가능한 한 놓치지 않으려 했고, 때로는 보고서를 거의 다시 써주다시피 하기도 했다. 업무적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학술자료를 찾아 공유했고, 따로 시간을 내 설명하기도 했다. 세 달에 한 번씩은 꼭 1:1 면담을 하며 의견을 듣고 조언을 건넸다. 내가 예전에 바라던 리더의 모습, ‘관심을 가져주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정말 좋은 리더였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유는 명확하다. 평가 결과 때문이다.
개인 평가는 상대평가이고, 그 Pool은 부서가 아닌 센터 단위다. 즉, 우리 부서에서 S를 받는 사람이
1명일 수도, 2명일 수도, 아니면 단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작년, 우리 부서에서는 S가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나는 분명 S를 적어 올렸지만, 최종 단계에서 임원에 의해 모두 조정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팀원들이 말하는 ‘좋은 리더’란, 회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더 정확히 말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리더라는 것을.
아무리 관심을 주고, 지식을 나누고, 시간을 써도 조직 안에서 더 나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 노력은 결국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걸 해주지 못한 내가.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열심히 했지만 결과를 만들어주지 못한, 무능한 리더’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내 회사 생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다시 리더의 자리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다시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더 치열하게 부서원들이 빛나고,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싸워보고 싶다.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더 많이 위에 어필하고,
그들의 성과가 조직 안에서 제대로 보이도록.
아이러니하게도, 리더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무엇이 좋은 리더인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내 리더에게 날 끌어올려 주길 전적으로 바라는 건 아니다. 결국 회사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날 빛나게 해 줄 리더를 꿈꾸긴 하겠지만, 결국 모든 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니까.
리더에 대한 기대는 기대고 더 치열해지지 않으면 당신의 자리는 차갑게 식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