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국제 하프 마라톤 달려 보고서

아킬레스건 염을 이끌고 업힐 지옥을 체험하다

by 구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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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마라톤 대회를 신청할 때는 언제 그 대회 일정이 오려나 하는 까마득함이 있는데,

막상 대회날이 가까워 오면 벌써 그 날짜가 됐나 하는 조바심이 들게 된다.


이번에도 대회를 앞두고 열심히 페이스를 올렸는데, 안타깝게도 대회 일주일 전 왼쪽 아킬레스 건에 염증이 생겼다. 급하게 병원도 가고, 훈련도 중단하고 쭉 휴식하고 했는데, 잘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회 전날, 가볍게 몸을 풀어보고 집에 와서 짐을 챙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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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민이었던 복장은, 아침 시간에는 살짝 추운 감이 있었는데, 어차피 뛰면 온도가 오를 듯해서 반팔 반바지로 정했다. 싱글렛을 입어볼까도 고민했는데, 아직 어색하기도 했고 그래도 대회 티셔츠를 입어주는 게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에 반팔티셔츠를 입었다. 티셔츠가 검은색이면 다른 때 입기는 괜찮은데, 조금 칙칙해 보이긴 하다. 하필 모자도 검은색, 바지도 검은색, 신발마저도 검은색이라 암흑의 기운이 가득이다.


출발 전, 7km마다 먹을 요량으로 에너지젤 4개 + 여분 하나를 챙기고, 얼마 전부터 애용하고 있는 러닝 모자를 쓰고, 안경은 지금 쓰고 있는 테가 은근히 무겁기에 예전에 쓰던 가벼운 티타늄 안경을 쓰기로 했다. 고글을 낄까도 고민했는데, 어차피 땀이 나면 안경이 불편하기도 해서 초반에 땀이 흐르기 전까지는 안경을 쓰고 중반부터는 그냥 안경을 벗고 뛰는 경우가 더 많아서 괜한 돈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 웜업을 위해 일회용 우비를 입고 5km가량 뛰다가 첫 급수 지점에서 벗기로 하고 우비도 챙겼다. 얇지만 보온성이 정말 좋다. 괜히 러너들이 많이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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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이고, 뜻하지 않게 축구장 잔디 위에서 몸을 풀다가 조금은 지겨운 내빈객의 인사를 듣고 드디어 출발. 아킬레스 건이 정상이 아니기에 처음은 630 정도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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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약간 불편한 감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달릴 만은 해서 1km 이후부터 530 정도로 달렸다. 그렇게 첫 번째 언덕인 선학지하차도를 만났는데, 도심 마라톤이 의례 그렇듯 지하차도에서 소리나 질러야겠다 했는데, 신나는 비트가 들려왔다. DJ가 음악을 틀고 디제잉을 하는 게 아닌가!?


빠른 비트에 몸을 맞춰 언덕임에도 수월하게 지나고, 그다음에 동춘고가, 송도 1교.. 차로 자주 다니던 도로인데, 차로 달릴 때는 몰랐는데, 뛰면서 고가를 만나니 정말 힘들었다. 올라가며 페이스는 떨어지고, 내려갈 때는 아킬레스 건이 신경 쓰였다. 이쯤부터 PB는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곧 반환점.

집이 멀지 않아 와이프가 혹시 가능하면 애와 함께 오겠다고 하여 나이키 러닝 클럽에서 위치 공유를 해놓긴 했는데, 과연 나올까? 하는 기대를 하며 반환점으로 가는데, 멀리서 와이프와 아이가 보였다!


갑자기 힘이 났고, 전체 코스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가면서 한번 돌아오며 한번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속도를 더 내봐야지. PB 할 수 있다라고 송도를 떠나며 페이스를 올리려는데, 다시 마주한 고가도로와 또 고가도로..


다시 한번 지하차도를 지났지만 처음처럼 힘이 나진 않았다. 힘들다..

앞으로 남은 건 2km. 시계를 보고 또다시 욕심이 났다. 그래 해보자.

그렇게 열심히 달렸고, 문학 경기장이 보였다. 저기에서 좌회전하면 이제 결승선이다. 란 생각으로 달려가는데, 마지막에 맞닥뜨린 경기장 입구 업힐은.... 정말 힘들었다.


작년에 인천 국제마라톤(Full) 중계를 봤었는데 엘리트 선수들도 이 구간을 정말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곧 도착인 것 같은데 끝이 안 났다. 그리곤 경기장 입장. PB를 위해 남은 시간은 2분. 전력으로 트랙을 뛰었는데, 생각만큼 속도가 안 난다. 그냥 트랙 안쪽을 질러서 갈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멘탈의 끈을 잡고 결승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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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57분 37초.

작년 MBN 기록이 1시간 57분 4초. PB 실패.


처음 1km에서 1분 정도 느리게 달린 걸 메꾸기엔 업힐이 너무 많았고 체력도 부족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작년 보다 자세가 많이 좋아져 이제 고관절이 아프지 않다는 점과 아킬레스 건도 크게 문제없이 완주했단 것이다. 더 열심히 달리는 것 외엔 별다른 답이 없다. 그래도 대회는 항상 재미있다. 다 같이 같은 목적을 향해 뛰고,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평소엔 달리지 못할 코스를 달려보는 것. 그래서 매번 대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와이프와 약속한 1년 마라톤 상한제에 따라 다음 대회가 언제가 될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1년에 최대 4회 나가기로 했는데, 벌써 2번을 나갔으니..


빨리 부상을 완치하고 다시 페이스를 올려봐야겠다.


약간 별개 얘기인데, 짐 찾는 건 왜 항상 개선할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넓은 구역에 짐을 찾으러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때문에 지연되는 걸 텐데, 차라리 한 번에 5개 정도의 번호를 듣고 5개를 한 번에 들고 오면 더 빨라지지 않을까? 대부분 짐이 작을 텐데 말이다. 달리고 나서 땀이 식어 추운데 40분가량 줄 서서 기다리다 보니 들었던 별의별 생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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