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까, 잡을까?
항상 웃던 그녀의 미소와 말투가 차갑게 변했다. 그녀와 함께 있던 시간도 그렇게 얼어붙었다. 말을 걸어보지만 그 말은 메아리 없이 공중에서 사라진다. 냉랭한 분위기가 우리의 이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아직 내 마음은 식지 않았는데. 그녀를 잡아야 할까, 놓아줘야 할까?
흔한 연애 소설에서 볼만한 이야기이지만 저런 상황은 회사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특히 자신의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에게는 (밀레니얼 보다 Z세대가 그 경향이 더 크다.) 이별 통보가 그렇게 놀랍지 않다.
한 팀원이 사직 의사를 밝혔을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당황, 서운함, 혹은 분노? 마치 예고 없이 찾아온 연인의 이별 통보처럼, 팀원과의 이별도 갑작스럽고 혼란스럽다. 남겨진 팀장은 여러 생각에 휘말린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더 잘해줄걸.”, “어차피 가도 후회할 거야.”
구질구질하게 떠나려는 사람을 잡아야 할까, 아니면 쿨하게 보내줘야 할까?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팀원 민수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에서 연봉 20% 인상을 제안했고, 기술적인 도전도 더 커 보였다. 소문을 들은 팀장은 밤늦게까지 남아 민수와 대화를 나눈다.
"너 지금 빠지면 프로젝트 완성도 흔들려. 내가 인사팀에 얘기해서 보상 안 되던 부분 조율해 볼게. 원하는 교육도 붙여줄 수 있어."
민수는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이직을 택했다. 그가 원한 건 단지 보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였다. 팀장은 자책한다. 붙잡을 수 있는 걸까, 붙잡아도 되는 걸까.
지연은 조직 안에서 유일하게 실험 설계를 혼자서 해내는 인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스타트업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퇴사를 결정한다. 팀장은 말한다.
"거기 사람도 몇 안 되잖아. 시스템도 없고. 너 그런 불안정한 데서 오래 못 버틸 거야. 후회하지 마."
지연은 담담히 인사를 건네고 떠난다. 1년 후, 그녀는 스타트업의 공동 창업자가 되어 언론에 이름이 실린다. 팀장은 어색한 미소로 기사를 넘긴다. 떠나는 사람을 저주하면, 남는 사람도 팀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현석은 말없이 일 잘하는 팀원이었다. 어느 날,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권태, 매너리즘. 팀장은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 가려면 가. 이번 주까지만 정리하고 나가. 송별회 같은 건 없어."
현석은 마지막 날까지 묵묵히 일하고 떠났다. 팀장은 쿨해 보이고 싶었지만, 속은 상했다. 하지만 그 쿨함은 상처를 덮는 감정의 회피였을 뿐이다.
수진은 오랜 시간 함께한 팀원이었고, 유학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다. 팀장은 미소로 응대한다.
"수진 씨는 어디 가도 잘할 거예요. 우리 팀에서 해낸 것들, 다 자산이 될 거예요.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
수진은 울컥한 마음으로 팀장을 바라봤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성장은 누가 우리를 떠날 때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 있어."
보내는 사람이 아름다워야, 떠나는 이도 그 조직을 잊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이별의 순간에만 집중한다. "잡을까, 말까?", "보내도 될까?"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팀원이 '떠날 필요 없는 팀'이라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리더십 서적 《Radical Candor》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도전하라(Care Personally, Challenge Directly)'고 말한다. 즉, 팀원이 단순히 '좋은 사람'에게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오래 머무른다는 뜻이다.
또한 《The Five Dysfunctions of a Team》에서는 '신뢰의 결핍'이 조직 해체의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팀장이 팀원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팀원은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팀원의 성장 욕구를 점검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봤다.
“요즘 어떤 일에 가장 흥미를 느끼세요?”
예전에도 고민했던 부분인데, 가능하면 작은 기회를 주고 스스로 만들어 가게 하려고 한다.
권한 위임은 '신뢰'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직 조짐이 보일 때, 정면으로 대화해야 한다.
“혹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계세요?”
떠나려는 마음보다, 남을 이유를 먼저 찾게 하자.
팀의 미래와 팀원 자신의 미래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야 한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진심을 전해 보자.
“당신이 있어서 참 든든했어요. 고맙습니다.” (좀 오글거리긴 하다.)
팀원은 떠난다. 팀장은 남는다. 하지만 그 여운은 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내가 더 좋은 팀장이었다면, 그는 남았을까?”
그 질문을 품은 팀장은 다음 이별 앞에서 조금 더 단단해질 거다. 그게 팀장의 성장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