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뮌헨에서 독일 지하철인 U-bahn을 타보기로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6시 30분경 호텔 로비층으로 내려와 평소와 다름없이 조식을 챙겨 먹고 호텔을 나선다. 나에게 점심이나 저녁이 부실하니 항상 호텔 아침 조식은 진수성찬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리안 광장 부근에 위치한 레지던츠 궁전. 사실 유럽의 궁전이란 것이 다 비슷하다. 화려한 방, 왕실 가족의 초상화, 금은보화로 치장된 가구나 집기 등. 레지던츠 궁전은 바이에른 왕국의 통치자 비델스바흐 왕족의 궁전이고 바이에른 주의 주도시가 뮌헨이다.
뮌헨 중앙역 안내소에서 처음으로 일일 교통권을 끊었다. 뮌헨 중앙역 남문 쪽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내려가니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이 엘리베이터 앞에 티켓을 펀칭하는 파란색 기계가 있다. 펀칭을 하지 않고 다니다 적발되면 60배의 운임을 낸다고 하니 명심해야지, 언제 어디서 검표원이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보니 이 역을 통과하는 노선은 U3과 U6인데 두 노선 모두 마리안 광장 역에는 가지 않는구나! 차선책으로 마리안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오데온 광장역에 내리기로 한다.
오데온 광장 역 승차장 오데온 광장 엘리베이터 U-bahn 펀칭기계
오데온 광장역에서 올라오면 보이는 장면
오데온 광장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사진에서 보았던 오데온 광장 거리가 보인다. 소방관들이 입는 야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들에게 레지던츠궁전으로 가는 방향을 물어보았고(관공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더 친절하게 안내한다) 한참 가다가 노천카페 여주인에게 다시 물어 레지던츠 궁전에 이르렀다.
레지던츠 궁전 입구
레지던츠 궁전입구에서 안내원 같은 젊은 친구가 있어 그에게 ‘휠체어가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레지던츠 궁전은 입구부터 계단이 여러 개 있어서 휠체어 접근도 어려워 보인다. 나는 망설였다. 휠체어도 없고 계단도 있는 건물이라면 나로서는 관람이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레지던츠 궁전 입구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기로 하였다.
벤치에 앉아 한참 멍 때리기를 하던 중 아까 안내하던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젊은이는 내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관람을 망설이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그 젊은이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데 대충 해석해 보니 ‘휠체어는 없지만 별도로 엘리베이터가 있고 안내하는 다른 직원이 도와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한번 용기를 내기로 하고 관람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보이니 그 젊은이는 나를 입장권을 구입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 젊은이는 나이 든 직원과 서로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기다리니 조금 후 얼굴이 후덕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나와 또 다른 일행(휠체어를 탄 남자와 보호자인듯한 여자)과 함께 별도의 통로를 이용하여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하였다. 그 안내원은 성격이 호탕하고 친절하였다. 그 안내원은 세르비아 출신이고 이름은 ‘바하’라고 소개하였다. 바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나도 바하를 좋아한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친구를 며칠 후 뮌헨 시내를 걷다가 서로 알아보고 환하게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노약자들이 쉬어가라고 준비한 의자 궁전내부 텍스타일 그림
레지던츠 궁전에는 관람객들이 많지 않아 좋다. 레지던츠 궁전 2층에는 주로 텍스타일(천으로 짠 그림)이 많았다. 오래된 텍스타일에서 쾌쾌한 냄새도 났다. 텍스타일은 관리도 어렵고 때나 먼지가 끼면 세탁도 어려울 텐데 굳이 저런 걸 제작하였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림의 내용에 대하여는 알 수없었다. 그림 하나하나가 모두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 텐데 그림에 대하여 설명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있다 하여도 독일어로 되어 있어 내가 이해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전시장 방마다 지키는 직원이 있었으나 무엇을 물어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변할 뿐이다.
2층 전시장에는 곳곳에 의자가 있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나 노약자는 쉬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전시장 안내원 ‘바하’가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고관대작들이 앉아 있었을 좌석 텍스타일 그림
귀족들이 예배를 하는 공간
레지던츠 궁전 복도에 비친 햇살 레지던츠 궁전 복도 창
레지던츠 궁전 복도에서 밝은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복도에 비치는 광경을 보니 왠지 행복해진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실 복도에 비친 햇살이 생각나서일까.
레지던츠 궁전
레지던츠 궁전
궁전 내부는 어느 나라 궁전이나 다 그렇듯이 화려하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비엔나의 쇤브룬 궁전의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제법 화려한 구색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당시 왕의 삶이라는 것은 일반 서민들과 전혀 다른 세계였으니 우리가 상상하기는 어렵다.
레지던츠 궁전을 모두 관람하고 나오면서 찍은 장면이다.
레지던츠 궁전을 나와서 하늘을 보니 푸르고 깨끗한 날씨이다. 뮌헨의 날씨는 흐린 날이 많았는데 이 날은 파란 가을 하늘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푸른 하늘을 보는 날은 이유 없이 행복해진다.
레지던츠 궁전을 보고 난 후 나는 슬슬 마리안광장 쪽으로 걸어가기로 하였다. 걷다가 적당한 레스토랑이 나오면 점심도 먹을 것이다. 바이에른 극장도 보인다. 바이에른 극장도 구경해야 하는데 오늘은 시간이 안될 것 같다. 바이에른 극장에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뮌헨 필하모니의 사운드를 감상할 기회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미리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하여 아쉽다.
뮌헨 바이에른 극장
레스토랑 안에서 찍은 밖의 풍경(바이에른 극장의 귀퉁이가 보인다)
스테판하우스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찍은 바깥의 풍경
점심때 먹은 농어
바이에른 극장 건너편에 위치한 슈테판 하우스라고 이름이 표시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니 내용은 잘 모르겠다. 잘 모르면 무조건 내가 아는 단어가 적인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Fish'라고 적힌 메뉴를 주문하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농어. 조금 짜긴 하지만 입맛에 맞다. 물값 포함하여 39.9유로, 한국돈으로 55,000원 정도 고가의 음식이다. 게다가 나는 팁까지 포함하여 45유로를 주었더니 여자 종업원이 좋아한다. 내가 들어간 레스토랑은 제법 격조가 있는 레스토랑이고 관광객들보다는 뮌헨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레스토랑 같아 보였다.
레스토랑을 나와 뮌헨 신시청사 방향으로 걸었다. 오늘 처음으로 뮌헨 신시청사를 가까이 보는 날이다. 신시청사 앞에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공사용 차량이 있고 펜스가 처였다. 신시청사 1층에 있는 여행안내소를 찾아갔다. 뮌헨 중앙역 안내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뮌헨 중앙역 안내소에서는 기계적이고 사무적이며 티켓을 끊어주는 역할만 한다면(뮌헨 중앙역이 공사 중인 관계로 그런 것 같다) 마리안 광장 안내소에서는 각종 지도와 팸플릿 등을 비치하고 있었고 여행에 관한 종합 안내소로 보인다.
귀국 전날 호텔 카운터에서 공항 가는 taxi를 예약하였다. 카운터 직원이 예약 내용에 대하여 뭐라고 하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예약을 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니 다른 내용이야 별개 있겠는가. 처음 이 호텔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받은 메일에 의하면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100유로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하였으니 더 이상 비용에 대하여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것이 불찰인 것 같다. 실제로 공항에 도착 후 택시기사는 130유로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귀국하는 날 아침에 호텔 로비에 내려가니 예약한 택시기사는 이미 와 있었다. 택시기사는 전형적인 중동 지역 사람으로 보인다. 택시는 시내를 빠져나와 시외를 달렸다. 좌우로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는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뮌헨공항에 도착.뮌헨 공항 출국장에 들어가는 문 앞에 도착하였다.
택시기사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130유로라고 한다. 어? 내가 호텔 측으로부터 안내받은 메일에서는 100유로라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택시기사에게 100유로라고 안내받았다고 하였다. 택시기사가 뭐라고 하는데 알아먹지 못하겠다. 예약비? 기다리는 비용? 뭐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내가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따질 수도 없다. 좀 찜찜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 대신 팁은 없다.
뮌헨 공항 루프트 한자 체크인 카운터(교통약자를 위한 별도의 창구를 운영한다)
나를 한국으로 데려다 줄 루프트한자
택시에 내려 출국장 로비에 들어서니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 지, 아니면 비수기라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고 한가하였다. 내 눈에 띄는 남자 공항 직원에게 체크인을 어디서 하느냐고 물으니 손가락을 저쪽을 가리키며 일러준다. 체크인 카운터 맨 끝에 가니 장애인 마크가 붙어 있는 창구가 보인다. 아! 장애인 창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구나. 창구직원에게 휠체어서비스를 신청하였다고 하니 기다리면 안내원이 온다고 하였다. 잠시 후 중년쯤 된 듯한 여자 안내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온다. 생김새를 보아서는 중앙아시아 우즈베기스탄 출신인 듯하다. 그 안내원은 나를 휠체어에 태워 출국 심사를 하고 난 후 나에게 묻는다.
“중간에 식사를 하고 게이트까지 갈까요?. 곧바로 게이트까지 갈까요?”
지금 오전 11 경이니 탑승시간 오후 3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묻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게이트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일단 게이트까지 간 후 내가 알아서 부근을 돌아다닐 심산이었다. 안전하게 게이트까지 데려다준 그 안내원에게 팁을 건네 주니 좋아한다.
지루한 대기 시간을 지나 오후 3시경이 되니 탑승절차를 진행한다. 장애인을 먼저 탑승시킬 줄 알고 기다렸다. 인천공항에서 뮌헨으로 올 때도 그랬으니 뮌헨에서 인천공항으로 갈 때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다되어도 그런 기색이 없다. 나는 은근히 불안해졌다. 다른 탑승객이 모두 탑승하였음에도 항공사 직원은 기다리라고만 한다. 시계를 보니 곧 출발시간이 다 되어간다. 게이트 앞에는 항공사 직원 3~4명과 나, 그리고 휠체어서비스를 신청한 다른 한 사람만 남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남자 직원이 무슨 열쇠를 가지고 온다. 나는 그제서야 남자 직원이 준비해온 휠체어를 타고탑승절차를 진행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탑승할 때 사용되는 엘리베이터는 평소에 잠겨있고 필요한 경우에만 담당자가 와서 열게 되어 있었다.
귀국할 때는 비행시간이 11시간이었다. 뮌헨으로 갈 때 13시간짜리 비행경험이 있어서인지 좌석 앞 모니터에서 이런저런 것을 검색해 보면서 그런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뮌헨과의 첫 만남은 굿이었다. 다시 가고 싶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10일 동안 있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었다. 관심이 가는 곳은 많고 시간은 제한되어있고 항상 그렇다. 내 욕심이 너무 많아서일게다. 뮌헨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려 깊은 배려심이 몸에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항상 하늘에는 구름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뮌헨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