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 가기로 했다. 뜨거운 정열의 나라 스페인으로 가서 뜨거운 햇빛을 받고 싶었다. 안달루시아 여인의 강렬한 몸짓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여인의 강렬한 몸짓'이라고 하여 엉뚱한 상상을 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강렬한 몸짓'이란 플라멩코 춤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안달루시아 지방은 마드리드에서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스페인 전부를 돌아보면 좋겠지만 나 혼자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마드리드에만 머물다 오기로 했다. 가우디로 알려진 바르셀로나도 좋지만 왠지 시끌벅적할 것 같아 마드리드를 택하기로 하였다. 마드리드에는 유명한 프라도 미술관이 있고 부근에 소피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도 마드리드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한 몫하였다.
아침 5시경 일어난 후 면도만 한 후 캐리어를 챙겨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차가 밀리지는 않는다. 인천 대교를 건널 때쯤 되면 비행기 타고 미지의 세계로 갈 생각에 벌써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대한항공 터미널은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옛날처럼 제1터미널에 갔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나는 이미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미리 답사해 두었다. 정작 출발하는 날 터미널을 잘못 찾아 헤매면 낭패이다.
목발을 짚고 걷는 나는 주차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출국장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단기주차장에 주차하기로 했다. 단기주차장 중에서도 출국장에서 가깝게 위치한 주차장은 서편 주차장. 그중에서도 출국장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 위치인 기둥번호 155번에 주차를 하고 인천공항 도움센터에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하였더니 잠시 후 서비스요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나타난다. 서비스요원과 동행하여 여행자보험도 들고 대한항공 C 데스크 ‘도움이 필요한 창구’에 가서 체크인을 하였다. 대한항공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별도의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었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탑승게이트까지 오니 장애인선수단 같이 보이는 휠체어 일행들이 많이 보였다. 일행 중 한 분에게 물어보니 스페인에서 열리는 스페인 장애인배드민턴국제대화에 참가하느라 마드리드로 출발한다고 하였다. 우리선수들이 씩씩하고 멋져 보였다.
이번 비행은 원래 인천 출발이 오전 11:30분, 마드리드 도착이 현지 시각 오후 18:00시간으로 비행시간이 13시간 30분이었는데 출발시간이 아침 9:55분으로 앞당겨지면서 비행시간이 늘어났다. 똑같은 노선인데 비행시간이 1시간 이상이나 늘어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다행히 비행기의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도착 시간은 예정시각인 오후 6시보다 한 시간가량 앞당겨 오후 5시경에 도착하였다.
비행기 출발 직전 내부
비행기 기내식
이번 기내식은 당뇨식으로 주문하였다. 역시 당뇨식은 맛이 없어 보인다. 당뇨식임에도 작은 빵과 번데기 모양의 파스타 같은 것이 나온다. 탄수화물은 당뇨에 좋지 않은데 이런 것이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혈당을 많이 올리지 않은 탄수화물일까.
좌석은 이코노미석. 좌석이 좁아서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나에게 비즈니스석은 먼 나라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비즈니스석은 이코노미석에 비하여 워낙 비용 차이가 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행기가 마드리드의 바라하스(Baraias) 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 창밖을 통하여 언뜻언뜻 보이는 스페인의 풍경을 보니 높은 산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벌판이나 구릉지 정도가 보였다. 듬성듬성 민둥산이 보이기 하고 간혹 작은 숲이 보이기도 하였다. 높은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 땅은 이렇구나! 비행기가 지상에 착륙한 후 출국장 건물까지 도착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도착 직후 창밖의 풍경
바하라스 공항 도착 후 휠체어 탑승객을 위한 별도의 리프트 카의 모습
통상적으로 휠체어서비스를 신청한 승객은 일반 승객이 모두 내린 후에 휠체어서비스 요원의 안내에 따라 내리게 되어 있는지라 다른 승객이 모두 내리기를 기다렸다. 이번 비행에서는 휠체어배드민턴선수단까지 탑승한 상태라 휠체어서비스요원이 많이 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승객이 모두 내렸고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휠체어서비스요원이 나타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이번 비행에서는 휠체어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이 많아서 별도의 연결 차량이 와서 비행기 오른쪽 출입문쪽에 연결하고 있었다. 소형 트럭이 와서 리프트를 이용하여 박스를 항공기출입문까지 올린 후 이를 비행기 출입문과 연결하여 하차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모두 5명 정도의 진행요원이 와서 일을 진행하였는데 모두 상의에 장애인마크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문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직원으로 보였다.
다른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나서 한참 후에 휠체어서비스요원이 도착하였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다른 장애인선수들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출국수속을 받았다. 다른 승객들은 모두 수화물을 찾아갔을 텐데 나의 짐은 덩그러니 남아서 계속 수화물벨트 위로 돌아가고 있을까, 혹시 누가 나의 수화물을 가져가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나의 수화물은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수화물(검은색의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캐리어)을 본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약간 과장하면 이산가족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나의 휠체어를 밀어준 여성은 키가 작고 뚱뚱한 흑인 여성이었는데 ‘스몰팁’이라며 팁을 건네주자 그녀는 좋아한다.
공항밖으로 나와 택시 타는 곳으로 오니 대기 중인 택시가 꼬리를 물고 기다리고 있다. 대기 중인 택시가 얼마나 많은 지 맨 앞에 위치한 택시까지 오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택시기사는 능숙한 솜씨로 나의 캐리어를 택시 트렁크에 싣고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어야 했다. 이번 스페인 여행은 한인 민박을 하기로 했다. 언어도 그렇고(스페인은 식당 같은 곳에서 대부분 영어가 안된다) 관광정보도 얻기 위하여 민박을 하기로 했다. 민박집주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건물 사진을 택시기사에게 보여주었다. 민박집의 위치는 Callo 역(한국말로 까야요로 발음된다) 부근이라 하니 택시기사가 빠른 말로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하겠고 대충 분위기로 보아 자기는 그 장소를 안다는 것 같다.
공항에서 민박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니 택시기사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택시기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문대로 스페인 사람들은 거의 영어를 모르는 것 같다. 무사히 민박집만 찾아가기만 바랄 뿐이다. 번화한 거리를 한참 지나고 나서 카톡에서 보았던 민박집 건물이 보인다. 나는 택시기사에 이 장소가 맞으니 여기서 세우면 된다고 하였다. 택시비는 정액제라서 33유로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2유로를 팁으로 더 주었다. 그런데 택시기사는 시무룩한 표정이다. 팁이 작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어서 그런 지 모르겠다. 어쨌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