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2023 7/12
K와 이틀 전 밤에 세미냑에서 합류했다. 못 본 새에 훨씬 건강한 생활방식을 자랑하는 K와, 발리에 왔으니 요가 한번 해줘야지 하는 맘을 자랑하는 내가 맘이 맞아 인생 첫 요가에 도전하기로 했다. K가 보여준 책에 나온 요가 프랙티스는 이래저래 우리의 취향에 부합할 것처럼 보였다.
각자 그랩으로 부른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짱구로 향하는 길, 짱구가 우리 취향인데 왜 세미냑에 머무는지 다시 의문이 들었다. 그 숙소는 내가 골랐다. 매일 공짜 술/마사지 쿠폰을 줬으니까. 쌌으니까! 당당하게 스스로의 의문에 답변했다.
만 오천 원 정도의 저렴한 하루 체험 요가를 신청하고 수업 시작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힐링의 일부가 된다. 안팎이 연결되어 정원의 풍경에 녹아든 대기 장소는 요가 가르치는 곳은 이런데 구나 싶게 평화롭다. 초록색은 안정 효과가 있다더니 요가 안 해도 편안해지는 이 기분.
우리의 첫 요가를 책임진 강사는 기대치를 웃도는 프로페셔널리즘을 자랑했다. 안정적인 목소리와 군더더기 없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시간 동안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코어가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고. 영어로 동작을 지시해서 긴가민가한 부분은 옆 사람 보고 따라 하느라 눈알이 바쁘게 굴러다닌다. 역시 맨 앞 줄은 아니었어... 운동과는 다른 인생길을 너무 오래 걸었던거야. 숨을 세 번 쉬라는데 다섯 번 쉰다. 초보자 코스라서 다행이야. 살면서 제일 오래 허리 펴고 있는 기분이 낯설다. 움찔거리지 말래서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가 얼굴을 덮은 채로 움직이랄 때 움직이고, 멈추랄 때 멈춘다. 다들 딱 붙은 운동복을 입은 이유가 있었어. 초보자 코스지만 초보자 복장은 아니었던 똑똑한 사람들.
아무 생각이 없이 하라는 동작을 따라 하는데 머릿속을 비우라는 지시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단 걸 깨닫고 깜짝 놀란다. 극N이라 이런 적이 없는데. 의식하고 나니 다시 잡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수업은 끝을 향해 가고 명상에 집중하면서 다시 잡념에 사로잡힌다.
동작이 정지할 때마다 중간중간 정원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끼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도 평소처럼 중구난방은 아니다. 학창 시절 여름 5교시에 수업을 들으면 배도 부르고 나른한데,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여름 바람. 느릿하게 흔들리던 하얀 커튼.
요가가 끝나고 리셉션에 자리한 강사에서 인사를 건넸다. 요가 처음 해봤는데 덕분에 재밌었어. 똥그랗게 뜬 눈이 대답한다. 처음 해봤다고? 평생 처음? 어어 평생 처음. 언제나 처음이 있는 법이니까.
왜요? 모두가 다한다는 요가, 처음 해 본 사람들 첨 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