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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25. 2023

바이크 트립 1

발리 2023 7/13

느낌상 내비게이션


오늘은 발리에서 처음으로 바이크를 빌리기로 한 날. 타나롯 사원(Tanah Lot Temple)까지 가는 길이 거리도 있고 오래간만에 동남아 여행 왔으니까 언니 달려~ 한번 해줘야 한다는 그 전날의 합리적인 논의 결과에 따라 오늘 탈 스쿠터도 미리 찜해놨다. 

내 역할은 뒤에 잘 매달려 가는 게 전부인지라 아무 생각이 없이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K가 왓츠앱으로 예약한 신형 스쿠터는 시작부터 우리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휴대전화 거치대도 없다고 안 가져줬다더니 헬멧은 철기 시대부터 썼을 것 같은 모양새. 우리 머리 왜 감았니 친구야.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시동이 안 걸려요... K가 시도했을 때 안되더니, 웃으며 지나가던 리조트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분도 못 하고, 이분이 또 다른 직원 불렀는데 그분도 못 하고 보안 직원까지 왔다. 어느새 강강술래 할 수 있는 최소인원을 훌쩍 넘은 이 모임. 이쯤 되면 이건 바이크 문제야. 스마트키 시스템은 무슨. 이럴 때면 모든 게 단순하고 하나의 사물이 의심의 여지 없이 한 가지 기능만 하는 옛것들이 그립다.


네 명이 시도한 끝에 결국 보안 직원이 시동을 거는 데 성공하고 우리에게 방법을 시연하는 데 이분이 할 때도 됐다 안됐다 한다. 왠지 이대로 못 타고 그대로 반납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혼자서 시범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K가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잽싸게 뒤에 올라탔다. 부디 오토바이 신님이 우리를 보우하사.

세미냑에서 사원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아주 달랐다. 길이 험하고 바이크와 차가 엉켜 혼잡 그 자체.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풍경 구경도 하고 중간에 멈춰서 사진도 찍고 이런 느낌이 아니다. 공기반매연반을 만끽하다 시선을 떨구면, 도로 가장자리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뻗어진 K의 한껏 긴장한 발끝이 애처롭다. 스쿠터 운전도 못하는 애 달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휴대전화 거치대 부재 덕분에 인간 내비게이션이 된 걸로는 여전히 부족해서 중간중간 스쿠터를 세우고 길을 확인한 끝에 무사히 사원에 도착한 우리는, 정확히는 나는, 스쿠터를 쓰다듬으며 바이크 신께 감사 인사를 한번 드리고 사원으로 향했다.

좌우대칭되는 두 기둥 사이에 서서 기념 사진을 남기기 위해 치열한 눈치 경쟁이 벌어지는 곳


사원 밑 바다에서 난다는 신성한 샘물로 힌두 세례를 받을 때 내가 빈 것은 우리의 무사 귀환. 사원 앞에서 올려다본 절벽 위 레스토랑에서 코코넛워터를 주문하고 K가 한국에서 가져온 파우더 물티슈로 노출된 몸 부위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티슈 석 장으로 샤워하고 나서야 피부가 다시 뽀송해졌다. K-피부관리 최고다. 

코코넛 워터를 들이키며 열을 식히려 했지만, 절벽 위인데도 바람이 잔잔해서 시원하지가 않다. 이게 뭐야 이 느낌 아니야...


 

2편은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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