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프에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런던에 무사히 도착했다.
벌써 3번째인 숙소는 한 모녀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였다. 노팅힐에 위치했는데 이 동네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소호 거리에 있는 '플랫 아이언'이라는 가게가 상당히 유명했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외관이 마치 숲 속 같았다. 이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누구보다 준비성이 철저한 우리인데 이날은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분명 숙소 밖으로 나올 땐 날이 화창했는데 드디어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를 보게 되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입장해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메뉴를 준비하면 작은 도끼 모형을 건네준다. 이런 작은 소품마저도 우리를 환영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도끼는 잃어버리면 안 된다. 잘 가지고 있으면 식사 후에 아이스크림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처음 마시게 된 진저비어. 비어라고 적혀 있어서 맥주인 줄 알고 마셨는데 논알코올이었다. 생강이라면 질색하는 나인데, 진저비어는 왠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마트에만 가면 진저비어나 진저에일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스테이크는 소문대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양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영국에 와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두 번째 음식이었다.(첫 번째는 초콜릿이 뿌려진 딸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도끼 모형을 직원에게 건네자 콘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건네줬다. 정말 달달하고 맛있었다. 밖에 나가서 먹으려고 하니 비가 많이 내렸다. 급하게 머리를 가리고 뛰다가 다행히 천장이 막혀 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한국에서 비를 맞으면 왠지 꿉꿉한 느낌인데, 영국은 틈만 나면 비가 온다고 하니 오히려 처음 맞는 비가 재밌었다.
그다음은 대영박물관에 들렸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 건물이 매우 웅장했다. 입장 전 줄을 서고 짐 검사를 받았다. 유럽을 다니면서 느낀 건 박물관이 많은 대신 대부분 짐 검사를 한다. 다행히 가방에 특별한 소지품이 없었기에 순조롭게 입장했다. 특이한 조각상들이 많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람할 게 별로 없다고 느껴 주디언니와 살짝 살펴보고는 나왔다.
박물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서점을 가기로 했다. 런던 리뷰 서점에는 다양한 사진책이 많았다. 예쁜 아가의 모습을 담은 사진, 유방암으로 인해 절제술을 했음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낸 여자, 영국의 다양한 풍경까지. 너무나도 책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무거운 내 캐리어를 생각하니 구매하려는 마음이 쏙 들어갔다. 아쉬웠지만 눈과 카메라에 담은 채 서점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또다시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머리와 옷이 잔뜩 젖고 말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다행히 거리에 예쁜 카페들이 있었고 우리는 한 에스프레소 가게에 들어가게 됐다. 당황스럽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해졌다. 우산이 없는 우리는 다행이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뭐 이런 날씨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따뜻한 라테를 마시니 비에 젖은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한숨 돌렸다. 서로 찍어준 사진을 보기도 했고, 오늘 저녁에 보게 될 뮤지컬 '겨울왕국'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한 시간 정도 됐을까. 우리는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하염없이 걷기가 시작됐다. 런던에 와서는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탔지만 걸을 때가 제일 많았다. 우리는 오페라 극장으로 향했다. 주디언니와 나는 워낙 귀엽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뮤지컬이 너무 기대됐다. 오페라 극장 근처에는 다양한 뮤지컬 포스터가 즐비해 있었고, 배우들이 이용할 것만 같은 연습실도 있었다. 그 거리는 마치 또 다른 세계 같았다.
오페라 극장에 드디어 도착했다. 겨울왕국과 관련된 인형, 드레스, 소품이 엄청 많았다. 그런데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어린 엘사들이었다. 우리보다 백 배는 설레는 마음을 갖고 찾아온 어린 엘사들. 각자 자신만의 드레스를 입고서는 뮤지컬을 기다렸다.
우리는 꽤 뒷자리에서 뮤지컬을 관람했는데 그럼에도 시야가 매우 좋아서 뮤지컬 보는 게 즐거웠다. 애니메이션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등장인물들과 올라프를 조종하며 연기하는 배우까지. 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이해하기 무리 없을 정도였다.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진짜로 겨울왕국 세계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는 기분이었달까. 중간중간 환호성을 지르는 어린 엘사들을 보며 뮤지컬을 더욱더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공연을 무사히, 아니 너무 행복하게 관람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 근처 마트에 들러 진저비어와 납작 복숭아를 사든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