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맞이한 셋째 날. 아침잠이 많은 나인데 시차 때문인가, 아님 설레는 마음 때문인가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오늘은 런던의 명소를 다닐 계획이다. 예상치 못하게 비가 많이 내리는 영국 날씨로 알고 있는데 이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은 날.
오늘 저녁에는 다른 곳으로 떠날 예정이다. 그래서 비좁았던 숙소와도 이별이다. 산뜻한 마음으로 숙소를 나왔다. 짐을 보관소에 맡긴 후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섰다. 우리 눈앞엔 이층 버스가 다니는 런던 풍경이 펼쳐졌다. 런던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인 만큼 눈에 잘 담고 싶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의 이층 버스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조금 민망했지만, 누가 봐도 관광객이었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다시 뚜벅이 여행이 시작됐다. 주디언니와 함께 그린파크를 거닐었다. 한국에서는 큰 공원을 가려면 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데, 런던은 닿는 곳곳 공원이 있어서 좋았다. 가을이 된 걸 티라도 내는 듯 나뭇잎이 한가득 떨어져 있고, 나무의 색도 바래는 중이었다.
한참 걷자 버킹엄 궁전이 보였다. 우리의 오늘 주요 일정은 근위대 교대식을 보는 것이다. 인파가 엄청나게 몰렸다. 마치 누군가 “각 나라에서 3명씩 모이세요.”라고 말한 것처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였다. 베어스킨 햇을 쓰고 발을 맞춰 걷는 근위대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근엄했다. 누군가는 말을 타고 무리 맨 앞을 지켰고,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왕실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주변을 순찰했다.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이들 같았다. 이후에는 런던 브리지를 거닐며 런던 아이를 멀리서 구경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문을 지키는 근위병을 만났다. 아이들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종종 포털사이트에서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고 속으로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우 수줍고 조심스럽게 멀리 떨어져 사진을 찍고 나왔다. 그 모습마저도 나에겐 하나의 따뜻한 광경이었다.
우리의 점심은 역시나 영국 음식이 아니었다. 미국 프랜차이즈 파이브 가이즈에 갔다. 최근 미국에 다녀온 주디언니가 추천해서 가게 됐는데, 처음 먹어본 미국 버거맛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땅콩도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이걸 계기로 파이브 가이즈 단골이 되었다.
이후에는 내셔널 갤러리와 코벤트 가든, 런던 아이, 빅벤을 구경하며 하루를 꽉꽉 채웠다. 아마 2만 보는 넘게 걸었을 것이다. 걷다가 힘이 들면 공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쉬면서 멍도 때렸다. 그렇게 우리는 런던의 많은 것들을 눈에 담았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이제 기차에 탈 시간이 됐다. 우리는 맡겨둔 짐을 찾아 기차역으로 향했다. 어디로 떠나냐고? 우리는 무려 웨일스의 카디프라는 곳으로 떠나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곳일 것이다. 참치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지친 몸을 이끌고 기차에 올랐다. 우리는 기차 창문 너머로 석양을 바라봤다. 일기도 쓰고 잠시 숨을 돌리며 우리는 카디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