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기차를 타기 전에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었다. 아침부터 빵을 먹으니 영 속이 더부룩했다. 그다음에는 영양제를 잔뜩 챙겨 기차에 올랐다. 벌써 몇 번째 기차인지. 곧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기차를 타게 될 것이다.
도착한 곳에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날씨가 좋다. 유럽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비가 온 적은 종종 있지만, 대부분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도 같이 맑아졌다. 심지어 선선한 바람까지 부니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었다.
프랑스 콜마르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곳곳에 운하가 펼쳐져 있었다.
운하 위 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서양인 남자가 "니하오~"라고 해맑게 인사를 건넸다.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은 깜짝 놀라며 남편의 등짝을 쳤다. 아내의 반응 덕에 우리는 웃어넘길 수 있었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인종 차별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기에 항상 조심하면서 다녔는데, 다행히 생각만큼 그런 경우는 없었다. 식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길을 나섰다.
운하 위에 다리를 걷는 것도 좋았는데, 곳곳에는 식당이 위치해 있었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백조와 오리가 빵을 얻어먹으려고 서성거리는 그림 같은 모습도 볼 수 있다.
귀여운 황새도 만났다. 콜마르가 있는 알자스(Alsace) 지방에서 '행운'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러 기념품 가게를 다니며 고민했다. 귀여운 건 못 참는 성격인데 혹여나 나중에 짐이 될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다음 가게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파는 황새를 발견했다. 주디언니에게 "나 결심했어. 이 황새, 내가 데리고 갈 거야!"라고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주디언니는 "그래라~ 인형이 귀엽게 생기긴 했어."라고 반응했다. 그렇게 황새는 나의 품 속에 들어오게 됐다.
황새를 품에 안고 다시 운하를 걸었다. 누군가가 타고 잠시 세워둔 자전거조차도 풍경의 일부였다. 파리에 있을 때 에펠탑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설렜다면, 콜마르에서는 운하의 반짝임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표현력이 부족한 내가 답답할 뿐이었다. 주디언니와 계속해서 "그림 같다. 진짜 그림 같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된 곳에 닿았다. 90년대 생이라면 한 번쯤 봤을 그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쩌다 이곳을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건물을 보고 상상하며 그런 즐거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참 신기했다. 나도 여행을 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영감을 얻으려고 하는데,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영감은커녕 눈에 담기도 바쁜 게 현실이다.
다음엔 '생 마르탱 성당'을 방문했다. 콜마르에서 오래되기로 유명한 성당이라 들어간 것인데, 어떤 노인 두 분이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고 있었다. 관람객은 나와 주디언니, 그리고 어떤 남성 한 명 이렇게 3명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악보에 집중하다가도 서로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다.
나는 이 장면을 참 사랑한다. 인생이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청춘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름다운 것도,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칙칙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떤 태도로 살아가냐의 문제였다. 노인 두 분은 진심을 다했다. 자신의 악기에, 연주에 그리고 몇 없는 청중들에게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도, 보이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진정성을 담아서 사는 삶을.
생각보다 작은 마을 콜마르에서 우리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기차까지 시간이 남아 공원에 있는 아이들도 구경하고, 잠시 쉬어갔다. 기차를 타고 스트라스부르로 다시 돌아오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분홍색 하늘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일이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제는 떠나는 게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짐을 쌀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곳곳을 누볐는데도 말이다. 다시는 못 올 거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에 큰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