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백을 메고 양 어깨에 백팩을 걸친 채, 캐리어를 끌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오늘까지 8일을 머물렀던 프랑스를 이제 떠난다. 이제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 스위스로 갈 예정이다.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열차였다. 스위스에 다다르자 푸른빛의 호수가 펼쳐졌다. 같은 유럽이면 비슷한 모습일 법도 한데, 매번 다른 풍경이 비치는 게 참 신기하다. 점심쯤 도착한 우리는 숙소 체크인 전 한 카페에 들렀다.
인터라켄은 깊은 산속 어딘가 숨겨져 있는 동네 같았다. 공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맑고 상쾌했다. 미세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벌써 유럽에서 4번째 나라에 도착한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하트가 그려진 라테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여유도 여유였지만, 사실 스위스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음료 한 잔도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천천히 한 입씩 나눠서 마셨다.
우리는 체크인 전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향했다. 이번 숙소는 한인이 운영하는 도미토리 형식으로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방을 써야 했다. 괜히 긴장도 되고 신경도 쓰였지만, 내 곁에는 주디언니가 있으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우선 숙소에 짐만 대충 맡기고 '아레 강'을 구경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스위스 물은 에메랄드빛이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색깔이 예뻐도 어떻게 물이 에메랄드빛이겠어?'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진짜로 그랬다. 신기한 마음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강을 바라봤다. 환상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강 위에는 기찻길도 있어서 기차도 다닌다. 주디언니와 근처 마트에서 닭다리를 한 개씩 사서 벤치에 앉았다. 음식은 소박했지만, 두 눈이 풍성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뭘 먹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이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게 중요했다.
물이 너무 맑아서 나무와 하늘이 그대로 비쳤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을 경험하는 시간이기에 더욱 값졌다. 같은 지구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풍경이 달라진다는 게 참 신기했다.
산책로에는 강과 잘 어울리는 빨간 벤치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 앉아 그림 같은 모습을 감상했다. 비록 나무에서 날파리가 계속 떨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어깨를 툭툭 털며 감상을 멈추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이성적인 주디언니도 스위스 풍경 앞에서는 감성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마치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표정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꼭 가보라고 할 때 사실 고민이 됐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액티비티는 물론이고, 외식조차도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처럼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비싼 곳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빙하가 녹아 고스란히 흘러내리는 아레 강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이런 자연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위스에서의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덜 먹고, 덜 즐겨도 괜찮다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을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