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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꿈, 파리 #3

by 이 은

꼭두새벽 같이 일어났다. 오늘은 주디언니가 기대하고 기대했던 '디즈니랜드'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역으로 가서 기차로 환승했다. 유럽에 오니 지하철, 버스는 물론 트램과 기차를 수없이 탄다. 특히 기차는 한국에서 1년 동안 타는 것보다 더 많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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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준으로 30주년을 맞이한 파리 디즈니랜드는 더욱 활기찬 분위기였다. 어렸을 때 비디오테이프로 보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니 설레면서도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어린이가 된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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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머리띠도 하고, 티셔츠도 입고 있었다. 예전에 상해에서 본 디즈니 성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디즈니 성은 볼 때마다 들어가고 싶어진다. '안에는 뭐가 있을까? 들어가면 나도 공주가 된 기분이 들까?'라는 유치한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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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캠프'에도 들렸다. 생긴 지 이제 갓 1년이 넘었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마블 영화를 더 많이 봤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웠다. 헐크뿐만 아니라 어벤져스 멤버들이 다 나열되어 있어서 마치 실물을 보는 듯했다. 심지어 밖에 나가니 어벤져스 분장을 한 직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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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어벤져스 복장을 하고 와서 인사를 건넸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이들 같았다. 인사를 나누는 내내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가끔은 저런 순수함이 부럽기도 하다. 얼마나 설레고 떨릴지 가늠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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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양한 놀이기구를 탔다. 함께 힘을 합쳐 점수를 내는 게임도 있었고, 따로 앉아 타는 기구도 있었다. 주디언니와 놀이공원을 온 건 처음이었기에 더 재밌었다. 승부욕이 강한 둘이라 점수 내는 게임은 더욱 열정적으로 했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는 깔깔거리며 탔다. 그리고 점심은 역시나 영국에서부터 좋아했던 파이브 가이즈를 먹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한참을 즐겼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생겼다. 디즈니랜드에 있는 동안 자꾸 머릿속에서 에펠탑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주디언니는 밤까지 기다려 불꽃쇼를 볼 예정이었고, 나는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주디언니에게 이야기했다. "언니 나 에펠탑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혹시 괜찮으면 오늘은 따로 시간을 보내도 될까?" 주디언니는 처음에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그럼 나는 여기서 밤까지 있고 너는 에펠탑 보러 갔다가 숙소에서 만나자."라고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였으면 따로 갈라지는 게 어려웠을 텐데 존중해 주는 마음이 기억 속 진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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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 커피 한 잔을 사서 기차를 타고 파리 시내로 돌아왔다.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색깔의 하늘이었다. 다들 퇴근하는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나는 혼자 여유 있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며 에펠탑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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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서 하늘은 주황색과 분홍색 그 어딘가 색을 띠었고, 에펠탑은 점점 어두워졌다. '에펠탑아. 내가 또 너를 보러 왔어.'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몰려드는 인파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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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자 에펠탑에 불이 들어왔다. 불이 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혼자 온 나도 입을 떡 벌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펠탑은 정시마다 5분 정도 반짝이는데, 그 또한 환상이었다. 낮에는 많은 건물들 사이에 솟아있는 에펠탑이라면, 밤에는 혼자 빛나는 에펠탑이 샘이 날 정도였다. 에펠탑 앞에서 혼자 거의 2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니 이제야 충족이 됐다. 더 보고 싶었지만 겁이 많은 나는 더 늦어지기 전에 숙소로 향했다.


둘은 저녁도 거의 못 먹은 채로 만나 오늘 각자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주디언니가 디즈니랜드 불꽃쇼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또한 너무 멋져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에펠탑에 불 들어오는 모습을 마음껏 봤으니 그걸로 위안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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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파스타 해 먹을 수 있도록 재료 사놨으니 맛있게 먹어요~" 챙겨주는 건 너무 감사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와 주디언니 모두 요리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집에서 밥과 계란말이 정도 하는 내가 급하게 레시피를 찾아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니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해볼게."라고 이야기했다. 주디언니는 "뭐든 괜찮아.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라는 말로 나에게 용기를 줬다. 다행히 비주얼도 괜찮고 생각보다 맛도 있어서 우리는 아침을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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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사랑해 벽'과 '몽마르뜨 언덕'을 방문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사랑해 벽을 보고는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다양한 언어로 적혀 있는 벽이 예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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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을 몇 개 구경하고 몽마르뜨 언덕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었다. 성당 앞에는 에펠탑 키링을 판매하는 상인이 많았다. 한국에 돌아가 선물할 생각으로 키링을 20개 정도 구매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끼리 흥정을 하니까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상인은 몇 개를 더 챙겨주며 이 정도면 됐다는 식으로 우리를 돌려보냈다.


어느 정도 구경을 마친 우리는 언덕에 앉아 쉬었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마카롱 한 개씩 사서 먹으며 당 충전을 했다. 이날은 유독 해가 뜨거워서 선글라스를 끼고 더위를 식혔다. 저녁에는 '바토무슈: 센 강을 따라 파리를 구경할 수 있는 유람선'를 탈 예정이었기에 우리는 또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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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꽉 채운 일정 덕분에 선착장에 도착할 때 즈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바토무슈를 타려고 줄을 기다리는데 어떤 한 나라 사람들이 새치기를 해댔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용감한 사람들이 순서를 지키라며 이야기했다. 다행히 그들 덕분에 우리의 순서는 밀리지 않게 되었고, 안전하게 바토무슈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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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정말 많았다. 특히 독일 청소년들이 수학여행을 온 듯했다. 풍경을 구경하는 건지, 사람을 구경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눈과 카메라에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공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 에펠탑까지 가득 담았다.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관람한 후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오늘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런던 다음으로 제일 오래 있었던 파리였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주디언니에게 "우리 진짜 가는 거 맞지? 너무 아쉽다. 체력과 시간이 더 있으면 더 머물렀을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짐을 챙겼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하며 숙소 주인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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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되고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사서 기차에 올랐다. 몇 번째 타는 기차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지겹진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이 참 웃긴 게, 처음에는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다가 며칠 지내다 보면 금세 적응해서 그곳이 마치 내 제2의 고향인 양 행동한다. 파리도 그랬다. 처음에는 지하철도 무섭고, 소매치기도 무서웠다. 하지만 혼자서 에펠탑을 보고 숙소로 돌아갈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언젠간 다시 오리라 마음먹으며 파리를 떠난다. 이제 다음으로 발 디딜 곳은 어디일까? 그건 다음 편에 적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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