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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키 Jul 27. 2024

넷.

손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화숙의 살려달라는 신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센터에는 화숙과 같이 질병으로 인해 치매로 이어지는 어르신이 대부분이지만, 입소하는 어르신들 중에는 단지 고령으로 인해 귀가 어두워져 보청기를 착용해야 하거나,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야 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인지 능력도 좋고, 눈도 밝은 80~90대 연령의 어르신들도 있다.

그들은 재활 목적으로 센터를 이용하는데, 센터로 실습을 나오는 요양 보호사 실습생들은 이곳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모두 정신이 온전치 않은 줄 알고, 어르신들을 유치원생 대하듯 반말 섞어가며 대하는 화법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건지 사무원 세리는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요즘 유치원생 한테도 저런 식으로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하며 바로 엄마에게 달려가 이를 판이다.


장기 요양의  비전문가 사무원 세리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직장을 계속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이직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직장인 3.6.9 법칙이라는 게 갑자기 세리의 뇌리에 스치며, 그 법칙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조금 놀랍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접고, 세리는 시간을 확인하고 화숙을 모시러 보호자가 올 시간이 가까워 짐을 요양 보호사에게 알리러 생활실로 나갔다.


세리가 사무실을 나간 것을 확인한 센터장은

오늘 쟤 왜 이렇게 말이 없니?


뭔가 평상시와 다른 사무원의 모습에 사회 복지사 아로에게 말을 건네어 본다.

급여대장 정리하느라 정신없어서 그렇겠죠? 원래 우리는 월급 받으면 할 말을 잃잖아


헛웃음을 지으며 사회 복지사가 대답을 한다.


센터장은 세리가 사무원으로 3년을 넘게 있어준 게 감사하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본사가 사업을 개시한 이후 여러 지역에 믿음 센터가 오픈을 했고, 자신이 센터장으로 있는 이곳은 오픈한 지 8년째가 되었는데, 그동안 근무한 사무원 중 1년 이상을 버틴 사람이 없었는데, 세리는 3년을 버텨 주고 있다.

1년 이상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그만둔 이유는 쥐꼬리만 한 월급이 제일 큰 이유이고, 그다음은 그 월급에 비해 잡일이 많다는 것이리라.


근데 나는 세리가 전 직장을 왜 그만두었는지 궁금해. 꽤 좋은 회사던데, 왜 전 직장을 퇴사했냐고 면접 때 내가 물어봤거든. 근데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었다고 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는데 궁금하네. 왜 그만두고 이런 월급 받으면서 있는지..


센터장의 말을 듣고 사회 복지사는 예전에 세리에게 이력서 보니까 전 직장이 괜찮은 곳이던데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월급은 적어도 마음은 편하다]라고 말했던 세리의 해맑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화숙의 손자 다운이 센터로 도착한 시간은 15시 40분경이었고, 센터로 들어오려면 관계자의 지문 인식이 필 요하다.


화숙을 모시러 왔다는 연락을 받은 세리는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출입구 지문인식기에 검지 손가락을 올려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몇 초의 순간에 화숙의 손자를 보고 동공 지진이 일어나긴 했지만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대하듯 가식적인 웃음으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화숙 어르신 금방 나오실 거예요.


안내를 하고 세리는 사무실로 들어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저 얼굴이 맞는데... 아닌가? 날 못 알아보는 것 같긴 한데... 아닌가? 쟤가 걔 맞는 거 같은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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