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특히 1시부터 4시까진 돌아다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마친 우리는 그 시간엔 꼭 테라스의 썬배드에 누워있곤 한다. 오늘은 오전 내내 서핑을 하고 온 탓에 물에 더 들어가고 싶지는 않고, 서핑용 래시가드도 둘러볼 겸 집 앞 스퀘어에 나왔다. 스퀘어에 들어오자마자 밴드 공연이 한창이다. 우리의 발걸음은 이미 그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후다닥 볼일을 본 뒤 우렁찬 기타와 드럼 소리를 따라 들어왔다.
이미 노래와 칵테일에 한껏 취기를 오른 호주의 흥 많은 언니들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얼마나 리엑션이 좋은지 밴드 노래는 뒷전이고 이 언니들 노는 거 구경하는 재미가 콘서트급이다. 아무런 시선의 눈치 없이 맘껏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진정 삶을 살아가는 법을 아는 이들의 세계다. 이들 옆에서 용과 주스와 얼음물을 들이켜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진정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경험하는 일은 내 세상을 넓히는 일이다. 모든 점이 나와는 다르지만 이 시간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에 신비로운 동질감이 느껴진다.
공연이 끝이 나고 밴드의 가수들과 카페의 스탭들 사이를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저건 분명 오래오래 남을 좋은 사진이 되리라. 그 옆에 달려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대포같은 깡이 내게 있었다면 내 사진첩은 더욱 다양해졌을 텐데. 지금은 멀리서 지켜보며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상상하는 정도로 웃어넘겼다.
호주 언니들의 존재로 이 밴드의 무대는 더욱 커졌고 우리는 호탕하게 웃는 그 소리에 가슴이 뻥 뚫려버렸다. 저분들의 오늘 하루가 얼마나 행복할지에 내 행복도 덩달아 춤을 춘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 즐거울 때 맘껏 즐기자는 하나의 목표를 이룬 셈이다. 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거나, 나중에 나중으로 미루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한 다짐에 부합하는 하루였다. 발리의 젊은 날들이 차곡히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