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입의 어느 날, 마트에서 일하던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인생의 큰 전환점에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동료가 ‘남의 상황을 지나치게 고려말고 자신이 나아갈 길에 집중하라’고 조언했지만 제 빈자리로 인해 남은 동료들의 업무가 늘어날까, 얼른 퇴사 소식을 알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곧 계획했던 퇴사일이 다가왔고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사 담당자에게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녀는 간절한 목소리로 3월 말까지만이라도 근무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상황이라,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마트를 그만두는 미안함에 죄책감이 더해져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3월말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저는 회사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택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마트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저의 배달음식점에서 조리와 배달을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한 것 정도는 감수할만했고 순탄하게 두 가지 일을 병행해나갔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완벽한것만 같았던 저의 계획을 언제든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마트 측과 약속한 퇴사 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하던 저에게 야근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마트 야간근무자가 갑자기 퇴사하는 바람에 마트의 인력난이 더 심각해진 것입니다. 그로인해 저녁에 제가 운영하는 음식점의 음식조리와 배달이 어려워졌습니다. 야간에 배달대행까지 이용하게 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고 서비스와 맛이 떨어지는 등 음식점 일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트 배달 중 저는 교통사고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인사 담당자는 얼마 전 그만둔 배송기사 중 한 명이 차량 사고를 일으키고도 부인한 사례가 있어서, 마트의 CCTV를 한 달 치 가량 모두 확인했다는 사실까지 설명하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또한 절차에 따라 사고 사실을 알린 제게 보고가 늦었다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과하게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사고처리에 대해서는 보험처리시 차량 보험료가 인상될 것이라며, 마트에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마트 차량의 파손 수리비까지도 제가 부담하라는 얘기와 규정에 따라 사고 경위서, 시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을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업무 중 사고를 일으킨 직원에 대해 마트측의 보호와 배려를 기대했지만, 아무런 책임있는 대처없이 교통사고에 대한 경위서와 사건에 대한 반성 및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시말서 작성만 요구하는 것은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굴욕감으로 밤에는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사 담당자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솟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두 안일한 저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마트를 배려한답시고 타인의 상황에 과하게 얽매여, 자신의 필요와 힘듦을 너무 소홀히 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마트 측에서 회사 차량의 파손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여 추가적인 차량 수리비를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사 담당자가 애써준 덕분에 사고 피해자와 적정 금액으로 보상절차를 완료했고,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3월 월급에서 40만원을 피해 보상금으로 마트에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급여로 받았습니다. 마트의 상황을 염려하여 더 오랜 기간 일하기로 했던 결정으로, 저의 음식점은 운영에 차질을 겪었고 교통사고로 물적, 심적 손해까지 경험했습니다. 더 오랜 기간을 일하고 급여는 줄어든 아이러니에 허무했습니다. 차량 수리를 맡아 수익을 얻은 카센터를 제외하고, 이번 일로 누구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지 않은 상황의 발생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정욕구, 인정욕구 혹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등에서 기인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확실히 거절하지 못하고 마음보다 과하게 호의를 베풀어 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로 타인을 배려하더라도 그 결과가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아서 오히려 억울한 상황에 처해 마음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고갈시키며 타인을 배려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 사람을 원망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제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가장 소중한 존재인 자신에게 배려라는 것을 보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와 타인에게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자신을 배려하려면 먼저,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깊이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어떤 일이든 간에 YES!라고 답하기 전에, 나의 상황과 마음을 고려해보고, 그 일이 나에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나의 마음이나 상황이 나빠지지 않을지 판단해볼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을 지키며, 타인에게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누군가의 부탁이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익숙하다면,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이 괜찮은지, 나의 상황이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 아니라면 정확하게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자기 배려를 통해, 우리는 더욱 건강한 관계를 맺고 균형 잡힌 삶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될것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지만, 지금부터 자신에게 집중하고 거절의 기술을 연습한다면, 내일, 모레가 되면 한층 더 쉬워질거라 생각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