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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May 29. 2024

사려니 숲길을 걷다가

빛을 향해 꿈틀거리는 작은 나무

맑고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날, 나는 사려니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이 숲길은 그늘이 많아 햇빛이 강한 날에도 쾌적하게 산책할 수 있다. 뙤약볕에 피부가 벌겋게 익어 간지러움과 고통을 동반하며 허물이 벗겨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좋은 점 중의 하나다. 그래서 화창한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사려니 숲길로 달려가 한두 시간 동안 산책을 즐기곤 한다.

처음에는 웅장한 나무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몇 번이고 이곳을 찾다 보니 익숙해진 풍경이 더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고, 그러던 어느 날 산책 중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대부분 그늘진 곳 중에서도 해가 움직이며 잠깐 동안 햇살을 받는 곳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곳에는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마주한 순간,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은 틈을 타고 올라오는 햇살을 놓치지 않으려는 어린 나무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종일 햇빛을 기다리며 자라나는 나무의 기다림은 마치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기다림과 같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그 나무의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기도 했다. 과연 이 작은 나무는 잘 자랄 수 있을까?

문득 그 어린 나무의 처지가 나와 겹쳐 보였다. 나는 50년 가까이를 살아오며 큰 전성기 없이 그저 어찌어찌 버텨 왔다. 얼마 전에는 6년 만에 운영하던 식당도 그만두며, 2억 원 가까이 되는 빚을 지고, 지금은 남의 사업장에서 최저 시급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처한 불안정한 상황이 어린 나무와 닮아 있었다. 나 역시 그 나무처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광명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희망의 빛마저 이미 주위의 큰 나무들에 가려져 많이 남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비관적인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에는 다 자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릴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해 오곤 한다.

하지만 그 어린 나무가 기어이 살아남고자 애쓰는 모습에서 나 또한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지금은 힘들고 막막하지만 예기치 못한 기회가 향후 찾아올 수도 있다. 좁은 틈으로 비치는 햇살처럼 나에게도 밝은 빛이 비칠 날이 오리라. 요즘 뉴진스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맨 윤성호 님의 인터뷰처럼 "내가 얼마나 잘 되려고 지금 이렇게 힘든 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잘될까?"라며 스스로에게 되뇌어보기라도 하자.

사려니 숲길 그늘에서 꿈틀대는 어린 나무처럼, 나 역시 나만의 빛을 기다리며 묵묵히 내 길을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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