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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May 30. 2024

벚꽃을 보다가

우리 인생의 미운오리새끼 시절에 대하여

만개하지 않는 꽃은 있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는 없다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계절이면, 나는 "계절이 돌아오듯 성실해져라"라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벚꽃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처럼, 나 또한 삶의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새겨보는 것이다. 올해도 화려한 벚꽃길 산책을 즐기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벚꽃 풍경 속에서도, 모든 나무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아직 꽃망울조차 터뜨리지 못한 채 수줍게 봄을 기다리는 나무,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꽃잎을 간신히 매달고 있는 나무. 그 모습은 마치 6년째 제주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끊임없는 어려움과 마주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꿈을 향한 여정은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고된 시간들이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왜 우리는 이토록 불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깊은 고뇌에 빠져 있던 순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 없이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없듯, 우리 삶에 드리우는 고난과 시련은 어쩌면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마치 차가운 겨울을 견뎌낸 나무만이 봄의 화려한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였다. 벚꽃으로 뒤덮인 한 그루의 나무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기하게도 한 나무에서 피어난 꽃이라 할지라도, 가지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아직 꽃망울조차 터뜨리지 못한 어린 가지들 사이로, 만개한 꽃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나무 안에서 시간차를 두고 각자의 속도로 봄을 맞이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 앨범 속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찬 눈빛,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 마치 병아리가 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어설프고 투박한 시기처럼, 우리 인생에도 그러한 과정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곧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지,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빛나는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과거 어느 날일 수도 있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먼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고민과 노력들이 만들어낼 눈부신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개하지 않는 꽃은 있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는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지금 나의 삶의 꽃이 너무 작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꽃 피워 나가려 한다.

우리가 때때로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직 세상에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 시절을 거쳐 아름다운 나비로 변태 하는 과정처럼, 우리에게는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통을 겪으며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힘겨운 시간 속에서 희망을 잃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벚꽃이 만개하기까지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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