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by 서채


어제와 같은 시간, 교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간다.


"얘들아 안녕!"


컨디션이 좋지 않다.


몸이 바닥을 뚫고 지하 500미터쯤 들어가 있는 느낌.

하지만 매일 피곤에 지쳐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내 몸이 머물고 있는 지하 500미터를 구경시켜 줄 순 없다.

따라서 내 컨디션 따위는 완벽히 무시하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힘찬 발걸음과 인사로 시작하는 밝은 수업을 선사하기로 결정했다. 빈틈없는 내 성격은 늘 철저한 계산이 뒤따른다.


"자. 오늘도 기분 좋게 시작해보자!"


나의 힘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아이가 손을 든다.


"그래 진우야. 말해봐"


"근데 선생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어떻게 알았을까.


빈틈없는 내 계산에 밝은 표정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웃을 때 작동하는 얼굴 근육을 분명 느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다.

인조인간의 600만 달러 짜리 눈도 따라올 수 없는 아이들의 눈은 표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읽어내고 판단하는 초 고 능력 슈퍼 렌즈다. 그런 아이들의 능력을 난 간과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마술사가 만드는 커다란 비눗방울 과도 같다.

터질 듯 하지만 터지진 않는 탄력 있는 몸을 이끌고 찬란한 무지개 색을 발하며 공중을 배회한다.

하지만 잘못된 손짓 한 번이면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커다란 비눗방울 말이다.


그런데 비눗방울이 항상 무지개 빛만 발하는 건 아니다.


수업 시작 30분 후, 교실 문이 세차게 열리며 여학생 하나가 들어온다.


"소영이가 오늘 좀 늦었네? 무슨 일 있어?"


"..."


대답이 없다.


이어 전투 적으로 의자를 뺀 뒤 신경질적으로 앉는다. 큰소리는 덤이다.


"책 꺼내고 준비해야지"


"..."


대답이 없다.


"책 안 가져왔어? 프린트해줄까?"


"..."


대답이 없다.


경험으로 봐서는 무슨 질문에도 쭉 대답이 없을 것이다.

그래 속상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어. 무슨 일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어.

과도한 자기 최면을 통해 분노를 가라앉힌다.


"야. 진짜 존나 짜증 나. 버스 안 와서 택시 탔는데 버스가 바로 왔어"


소영 학생이 옆자리 학생과 담소를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내 분노 상자의 봉인이 해제되었다.

더 이상은 안된다.


"이소영! 잠깐 나와봐!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우가 다시 손을 든다.


"근데 선생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그날, 난 아이들에게 결국 내가 머물고 있던 지하 500미터를 구경시켜 주고 말았다.




사춘기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예민하고 전투적입니다.

급격한 감정 변화의 곡선 안에서 매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죠.

그 안에서 우리 어른들은 늘 그들의 타깃이 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들이 우리의 미래 인걸.




오늘도 우리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을 보며 기도합니다.


"저들 안에서 오늘도 분노하지 않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