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어느 날,
집에서 나와 길을 걷던 중 의도치 않게 그녀를 만난다.
이렇게 하늘이 좋은 날,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길에서 너를 만나다니.
항상 오늘처럼 우연히 그녀를 만났던 걸 생각하면
그동안의 우연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굉장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너도 이런 하늘을 좋아할까.
너도 이 길을 좋아할까.
오늘따라 그녀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해.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어.
오늘은 꼭 고백하고야 말 테다.
수없이 반복하고 연습했던 말들을 또다시 떠올리고 복습한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어느새 내 앞에 선 너에게 드디어 용기를 낸다.
저기.. 할 말이 있어요
"..."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망설였는데,
오래전부터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
전, 당신이..
"..."
전 당신이..
너무 싫어요.
"..."
전 당신을 싫어합니다.
"..."
내가 좋아하는 이 길에서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앞에서 좀 없어져 줄래요?
"..."
아무 말없이 날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뗀다.
"좀 전부터 저를 계속 쳐다만 보시는데, 무슨 용건 이시죠?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난 그녀를 안다.
그녀도 나를 안다.
하지만 그녀는 날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그녀를 싫어한다.
서로 싫어하기 때문에 말을 걸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린 서로를 알고 있다.
하늘이 좋은 날, 내가 좋아하는 길 위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 힘든 분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냥 같이 있기 싫다'가 되겠죠.
마음속으론 늘 그분들에게 고백을 합니다.
"전 당신이 너무 싫어요"
이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하지만 주의할 게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면 늘 "찌질함" 의 감정이 찾아온다는 것.
이게 생각보다 상당히 찝찝합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치트키를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