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했던 제가 동료들과 심사위원님들 덕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더 발전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에서 파이널 대결 직전 떨어진 참가자의 탈락 소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다.
그렇게 떨어졌는데 정말 영광스러울까?
내가 한 문제를 더 틀리는 바람에 경쟁자가 나 대신 합격했다.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과 섞여서 이 만큼 한 것도 정말 잘한 거야. 이봐요! 나 대신 합격한 님들! 그동안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말 이런 마음이 들 수 있을까?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의 장렬한 죽음이 아닌 이상,
'탈락'에 영광은 없다.
내 잘린 다리를 들고 날 부축하며 총알 세례를 피해 같이 도망쳐 준 전우가 아닌 이상,
탈락하는 마당에 동료가 무슨 소용일까.
나도 조금은 경험해 봤기에 그때의 마음이 어떨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적어도 난 같은 상황에서 절대 영광스럽지 않았다. 아쉬움이 섞인 짜증만이 휘감았을 뿐, 경험에 대한 감사함도, 남은 참가자들의 우정 어린(?) 위로도,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송의 극적 요소를 살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탈락에 대한 솔직하지 않은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을 걸고 출연한 참가자 입장에선 여간 잔인한 것이 아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이미지 관리용으로써의 소감이라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특별함이 너무 강해 그 틈 안에서 탈락자의 이미지는 금세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탈락의 아쉬움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당사자가 지니고 있는 '견딤의 능력'이 탁월할 경우엔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회의 크기에 비례하여 식음을 전폐할 정도의 큰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앞으로의 괴로움을 대비해 마음을 다잡아도 모자랄 판에 탈락에 대한 소감이라니.
때문에 탈락의 마지막 순간을 반성으로 끝맺는 것보다는 탈락자의 미래를 위한 활로를 열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면 탈락 후에도 지속될 어느 정도의 관심을 통해 그 서운함과 고통이 그래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반성은 혼자만의 시간에 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점은,
예선 탈락자에게는 그러한 반성의 시간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내 의견에 힘이 실리려면 내 실력에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아.. 진짜 기분 별로네요. 다들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요. 나 같은 사람을 탈락시키다니.. 눈 귀 는 뭐하러 달고들 다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까짓 대회 아니어도 난 잘먹고 잘살테니까 멍청이들끼리 끝까지 잘해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