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by 서채

오늘 운 좋게도 별 몇 개가 미세먼지를 뚫고 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별똥별을 보는 아주 드문 행운까지 더해진다. 저 별똥별이 진짜 별인지 옆 건물 옥상에서 누가 던지는 맥주캔에 빛이 반사한 것인지 노화 증상이 진행 중인 내 눈으로는 분간하기가 애매하다. 그래도 센티해진 김에 그것이 별이라 믿어보기로 한다.


소원을 빈다.

매번 같은 소원을 같은 마음으로 빈다.


맥주캔이 내 소원을 들어줄 리 없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장소가 됐건 어느 시간대이건 상관없이 생각나면 그냥 빈다. 이뤄질 거란 확신보단 이루어지리란 믿음이 더 큰 나의 소원은 내 안의 희망이 되어 언제나 나를 움직이게 하고 버텨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소유함' 보단 '이루어짐'으로 소원의 질감이 바뀐 걸 보며 나도 어지간히 나이가 들었단 생각을 해본다. 무엇이든 구매할 능력이 생긴 탓도 있겠지만 사고 싶은 것이 없어진 탓도 클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란 문장을 하도 생각했더니 필요했던 것도 이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바쁜 나의 삶이 지루함으로 변질되진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대목이다. 그래도 현재까지 치열하게 살며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내 안의 톱니바퀴가 아직은 쓸만하다는 증거일 테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둡고 축축한 동굴을 혼자 걷고 있는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불행의 씨앗과도 같은 생각이다. 여기서 출구의 존재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는 동굴의 탈출 여부를 결정짓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원은 출구가 있다는 희망과 같다.


희망이 있고 아직 작동 가능한 톱니바퀴가 있다면 나이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언제고 불행의 씨앗이 뿌리내리기 전에 거둬 낼 수 있다.



근데 왜 자꾸 맥주캔 앞에서 기도하는 내 모습이 떠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