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버스만 봐도 울던 아이

by 쥴리

첫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두려웠다.

하루 종일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처음에는 축복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옥처럼 느껴졌다.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존재

불만의 표현은 모두 울음뿐이었던 존재와

24시간 붙어 있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었겠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조용한 무너짐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또 도움을 준다 해도 어찌 받아야 할지 몰랐다.



나는 결국 결심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잠깐이라도 숨 쉬자. 잠깐만이라도 나를 좀 살리자.”
그게 그때의 진심이었다.


무언가 특별하게 하고 싶은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어도 좋을거 같았고

아이보느라 뒷전이 됐던 집안일도 할 수 있을것 같았고

무엇보다 숨 한번이라도 크게 내쉬고 싶었다...
이기적인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다.
짧은 시간, 아이 없이 보내는 오전이
살아 있는 느낌을 줬다.
내가 내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커피도 따뜻하게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혹시... 선생님이 아이를 낮잠 시간에
이불을 씌운 채, 혼자 어두운 방에 있게 했던 것 알고 계세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 작은 아이를,
낯선 공간에, 말도 못 하는 그 아이를,
혼자 두고 이불을 덮어씌웠다고?


요몇일 아침에 가기 싫어하고

자다가도 몇번씩 울다 지쳐 다시 잠들고

잠꼬대인지 모르는 소리를 질렀던게 이거 때문이었나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그 작은 얼굴은 울다 지쳐 말라 있었고,
뒤도 안돌아보고 내 품에 안기면서도
한동안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느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했어서 이거저거 물어보면

그냥 졸린듯 눈을 감아버리고 뒤돌기 바빴던 내 아이....


그날로 나는 아이를 그만두게 했다.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내가 어떤 순간에도 곁에 있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미 아이의 마음엔
작은 흠집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노란 어린이집 버스만 봐도
숨고 울었다.
문 앞에 서기만 해도 몸을 떨었고,
놀이터에 가면 잘 놀다가도

또래 아이가 와서 같이 놀자고 하면 자꾸만 내 뒤로 숨었다.


"엄마 집에 갈래 집에 가고 싶어"


그 아이가 다시 어린이집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4살이 다 되던 무렵이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매일같이 “엄마가 미안해”라고 속삭였다.

내가 미워하고 했던 그동안의 기간에 대한 벌을 받은것 같았다.

지금은 정말 고맙게도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밝고, 웃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하지만 나는 가끔
노란 버스를 볼 때면
그날의 그 울먹였던 눈망울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직도
그때의 나를 용서하지 못한 채
작게 가슴을 쥐고 있다.


육아는 때때로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보다 나를 먼저 구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선택이
때론 아이에게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걸 아는 엄마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 무너진다.

나는 그 무너짐 속에서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함께 걸어왔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가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무서웠을 텐데도, 다시 세상을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내 큰딸... 내 첫번째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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