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쯤이었나....딸아이가 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문을 닫는다.
혼자 있으려 한다.
뭔가를 적고, 듣고, 숨긴다.
나는 안다.
이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걸.
너무 이르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아이의 변화가 낯설다기보다 미안하다.
딸아이가 사춘기를 맞을 즈음,
나는 둘째 아이를 재우고, 안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댁에 살아서 살림도 해야했지
아이들도 내가 봐야 했지....
그냥 하루하루는 전쟁과 같았다.
작고 예민한 아이 하나를 돌보는 것만으로
내 하루가 다 녹아내렸기에,
딸아이에게 눈길 하나 더 주지 못했다.
그 아이는 그걸 알고 있었다.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고,
눈치껏 말 줄이고,
때로는 스스로 동생을 봐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왜 자꾸 방에 들어가 있어?"
"엄마한테도 좀 얘기해줘."
그런 말을 꺼내 놓고도,
나는 그 아이 옆에 제대로 앉아 준 적이 없다.
듣는둥 마는둥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거리에서 외면 아닌 배려를 받으며
고맙기보단 미처 알아채지 못한 죄책감만을 쌓아왔다.
나는 딸아이에게 따뜻한 말을 자주 해주지 못했다.
“괜찮아.”
“힘들었지.”
“고마워.”
그 짧은 문장 하나를 내뱉을 여유조차 없었다.
아이의 감정은 생각보다 조용히,
그리고 깊게 자란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배운 것 같다.
아직은 웃는다.
아직은 같이 밥도 먹고,
가끔은 나란히 드라마도 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아이의 마음 한 켠엔
엄마의 ‘부재’가 아주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엄마인 나는 늘 같이 있었지만,
그 아이의 사춘기에는
너무 자주 ‘부재 중’이었던 것 같다.
그걸 생각하면,
괜히 더 많이 안아주고 싶고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매일 한 마디씩 말해주고 싶다.
“너, 그 시절 너무 멋지게 잘 버텼어.”
“엄마가 놓쳐서 미안하고, 지금은 너를 보고 있어.”
“지금부터라도, 잘 들어줄게.”
그리고 아이가 문을 닫아도
나는 이제 그 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려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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