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살이 7년, 내 이름은 없었다

by 쥴리

신랑의 사업이 무너졌다.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나는 끝까지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어렵게 마련했던 그 집에서도 나와야 했다.

우리가 직접 발품팔아 인테리어 한 우리의 첫집....

얼마 살지도 못하고 남에게 넘겨야만 했다.


그때 우리 아이는 겨우 세 살.
엄마 품에서 밤새 울다 잠드는 그 작은 아이를 안고,
나는 갈 곳 없는 현실 앞에 무릎 꿇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너무 싫었지만, 시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아직도 기억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시댁에 들어가 살아?’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으로서
어디든 몸을 뉘일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집은 내가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매일 눈치 봤다.
밥 냄새가 너무 진해도 눈치,
아이 울음소리가 커도 눈치,
심지어 내 한숨조차 조심스러웠다.

숨고 싶었다.
소리 없이, 공기처럼 투명하게 지내고 싶었다.


말을 아끼고, 감정을 감추고,
늘 조심조심 살아야 했던 나날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
식탁에 앉아도 마음 둘 곳은 없었고,
주방을 오가며 음식을 준비해도,
그 안에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그 집에선 내 이름이 사라졌다.
나는 ‘얘’, ‘엄마’, ‘며느리’였고,

누구에게도 그냥 ‘나’로 불린 적이 없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내게 “엄마, 웃어봐”라고 했는데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거울을 봐도 낯설었고,
말을 해도 목소리가 낯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나를 잃은 채 7년을 살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어른인 척,
괜찮은 척,
감정 없는 사람인 척 살아냈다.
누구에게도 도망갈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는 참 가여웠다.


다툼도 많았다.

같은말이어도 내 말은 믿어주지 않았다.

안들리나보다. 듣고싶지않나보다.

그냥 내가 싫은거였다.


큰 다툼으로 뛰쳐나왔다.

정말 10원도 없이 말이다.


이제는 시댁을 나와 나만의 공간에서
조금씩 다시 숨을 쉬고 있지만,
그 7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딘가 쪼그라든 마음 한 조각이 남아 있다.

그 시간,
누구도 내게 “힘들지?”라고 묻지 않았다.
그래서 더 고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말없이 참아낸 나 자신이 너무 안쓰럽다.

내 마음속 한켠은 새까맣게 문신처럼 새겨져있을 나의 7년.....

지옥이었다. 암흑이었다. 죽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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