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계획에 없던 아이였다.
너무 예기치 않게 찾아와서,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더 컸던 시기였다.
첫째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둘째는 형편에도 맞지않았으니...
큰아이가 겨우 네 살이던 그때,
나는 다시 임신 초기를 견디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입덧은 너무나 심했고, 아침마다 구토를 하고...
먹지도 못했으니 나중엔 위액까지 토하게 되고..
몸은 점점 무거웠졌고,
이게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겠고 나 스스로를 컨트롤 하기도 힘들었었다.
딸아이의 재잘거림조차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딸에게서 물러났다.
하지만 딸아이는 말이 없었다.
늘 그래왔듯, 조용히 나를 관찰하고, 조용히 나를 돕고, 조용히 감정을 삼켰다.
"엄마, 내가 물 좀 가져다줄게."
"엄마, 누워 있어. 내가 인형 정리할게."
그 어린아이가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 몰려왔다.
내색하지 않는 아이.
자기 마음보다 나를 먼저 헤아리는 아이.
한 번은, 내가 너무 힘들어 소파에 누워 있는데
딸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내 발등을 토닥였다.
작은 손으로, 천천히.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손길엔 온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딸아이가 혼자 인형을 안고 잠드는 모습을 보며
문득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서운한 눈빛.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애써 참아온 감정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 눈빛을 이제야 알아봤다.
그동안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딸아이는 내게 말하지 않았다.
아마 말해봤자, 엄마가 더 힘들어할 거라는 걸
작은 가슴으로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이미 그때부터 ‘엄마의 맏이’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강요받지 않아도 스스로 동생을 준비했고,
나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걸 조용히 감지했던 아이.
그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밤,
자기도 안기고 싶었을 텐데
늘 "잠깐만 기다려, 엄마 힘들어" 라는 말을 들으며
혼자 이불을 덮었을 그 시간들이
지금도 떠오르면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그 아이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줘’라는 말로 포장했고,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줘’라는 말로 미뤄왔다.
이제는 안다.
조용히 참고 있던 그 눈빛 하나가
말보다 더 큰 울음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엄마의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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