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게방 한편,
햇살도 겨우 스며들던 그 자리에서
자음·모음판 하나 놓고
처음으로 ‘ㄱ’을 짚었다.
“왜 내 이름은 ㄱㅇㅇ이지?”라고.
ㄱㅇㅇ
아이의 이름.
‘ㄱ’과 ‘ㅏ’, ‘ㅇ’.
‘ㅇ’과 ‘ㅏ’, ‘ㅇ’과 ‘ㅕ’, 그리고 다시 ‘ㅇ’.
하나씩 맞춰보며
한글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돈은 없었고,
여유는 더 없었지만
아이 마음엔 늘 배움의 불씨가 있었다.
학습지 한 장, 낡은 자음·모음판,
그것이 전부였던 날들 속에서도
아이의 눈빛은 별처럼 반짝였고
나는 그 별을 읽는 법을 가르쳤다.
아빠의 이름,
엄마의 이름,
동생의 이름까지—
가족이란 단어가
글자가 되어 눈앞에 피어났다.
책이 아닌 이름으로 시작된 한글,
가르침이 아닌 사랑으로 배운 언어.
그날,
가게방은 교실이 되었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생이었다.